강건너 침산 정상에서 바라본 함지산 망일봉
망일봉 정상
망일봉 표석
무태동 유래비
2003년 3월 유래비를 세운 무태산악화
한떨기 아름다운 털중나리 이 귀여운 꽃을 키워내는 산이기에 더욱 자랑스럽다.
띠 어릴 때 줄기를 까서 먹기도 했다.
울창한 소나무 숲 길
장승 인물상도 재미있지만 글도 좋은글귀를 선택했다.
함지산 망일봉이야기
표석(標石)에서 밤에 아낙네가 부지런히 길쌈을 하는 것을 보고 무태(無怠)라고 했다는 설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이야기이며, 태조 왕건이 지나 갈 때 마을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게으른 사람이 없다는 뜻에서 무태라고 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통설(通說)이다.
일부 학자들은 무태라는 말은 태조 왕건의 전설과는 무관하게 바다나 강과 달리 육지를 뜻하는 '뭍'에서 무태로 변했다 하기도 한다. 무태는 지금도 동화천이 마을 가운데를, 남쪽에는 금호강이 흘러가고 있으며 4~5세기 전 제방이 없을 시절 잦은 범람으로 뭍 즉 농경지는 극히 일부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장 먼저 망일봉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람은 인천인 태암(苔巖) 이주(李輈, 1556~1604)선생으로 생각된다.
그의 문집 중에 '망일봉(望日峯)'이라는 시가 있는 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태산에 일찍이 일관봉이 있으니
험준하게 높아서 여러 산악의 으뜸일세
노력하여 오르기는 모두 내게 달렸으니
등산객이여 오르기를 힘쓰기 바라네.
<대구읍지>에 의하면 공은 한강선생에게 사사하였고, 문장, 행의, 경학으로 사림(士林)을 추앙을 받았으며 매암 이숙량과 연경서원을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시 서사원과 함께 창의(倡義)하였다. 사후 서계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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