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낙포 이굉(李浤)선생과 귀래정 은행나무

이정웅 2011. 6. 20. 06:12

 

 1513년(중종 8) 귀래정을 지을 때 낙포 이굉선생이 심은 은행나무

 1982년 안동시가 보호수로 지정했다. 그러나 수령이나 심은 이의 이력을 볼 때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손색이없다. 

 안동팔경의 제2경인 귀래정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17호)서쪽

 귀래정 후면

 

 

 

초서의 대가 황기로선생이 쓴 현판

낙포  이굉선생의 신도비

 원이 엄마 상

 원이 엄마의 친필 편지

 

원이 엄마의 편지글 번역문

낙포 이굉(李浤)선생과 귀래정 은행나무

 

 

 

얼마 전 같은 분야에 종사하다가 퇴직한 사람들이 모여 문화유적답사를 간 일이 있었다.

목적지는 영양군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안동을 경유했다. 그 때 차창을 통해 우연히 본 장면이 TV와 신문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던 '원이엄마상'의 조형물이었고 이어 길가에 서 있는 큰 은행나무와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한옥이었다.

언젠가 다시 와서 자세히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바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도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었다.

조형물 이름은 '아가페상'이었다. 일찍 유명을 달리한 지아비에 대한 애절한 한마디 한마디가 이순(耳順)이 넘는 사람의 가슴에도 깊이 파고들어왔다.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안동시 보호수로 지정(1982년)되었으며 수령이 480년이라는 표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주변에 도로가 개설되어 생육상태가 양호한 것 같지는 않았다.

동쪽으로 난 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서니 귀래정(歸來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이었다.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 이증(李增)의 둘째 아들 낙포 이굉(李浤, 1440~1516)이 1513년(중종 8)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면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앞서 보았던 원이 엄마의 남편 이응태(李應台, 1556~1586) 역시 고성이씨로 낙포의 고손자였다.

몇 년 전 고성이씨 청도 입향조 모헌(慕軒) 이육(李育,1470~?)이 2만 1천 평의 연못 즉 유호연지(柳湖蓮池)을 조성한 사실과 그가 청도에 정착한 배경에 대해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또한 낙포의 조카여서 고성 이문과의 묘한 인연에 깜짝 놀랐다. 정자 밖에 있는 은행나무는 정자를 지은 낙포가 심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정자를 관리하고 있는 분으로부터 얻은 <고성이씨 안동문화유산, 2010>에도 은행나무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카페를 통해 종손 이만용님과 연락이 닿아 혹시 낙포선생의 심은 것이 아냐고 물어보았다.

확증할 수 있는 시문이나 문헌은 없으나 당시 정자 안에 있던 나무인 만큼 맞을 것이라고 했다.

 

낙포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심원(深源), 호는 낙포(洛浦)로 세종 조 좌의정을 지내 이원(李原)의 손자이며,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이자 영산현감을 지낸 이증(李增)의 아들이다.

이증은 1419년(세종 1) 서울에서 태어났다.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었으나 그 뒤에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문음(門蔭)으로 영산현감이 되어 선정을 펼쳤으나 본래부터 벼슬에 마음이 없어 임기도 마치기 전 산수가 아름다운 안동에 이거해서 살다가 1480년(성종 11)졸하였다.

 

낙포는 공의 둘째 아들로 1464년(세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480년(성종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된 뒤 군위현감·세자시강원문학·사간원헌납·사헌부지평·공조정랑·청도군수·사재감첨정·봉상시부정 등 여러 벼슬을 지냈다.

1500년(연산군 6)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예빈시정·승문원판교·상주목사를 역임한 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김굉필(金宏弼) 일당으로 몰려 관직이 삭탈되고 영해로 유배되었다.

이 때 형 평(泙)은 부관참시(剖棺斬屍), 조카 주(冑)는 장사(杖死)를 당하는 등 혹독한 화를 입었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뒤 다시 기용되어 충청도병마절도사·경상좌도수군절도사·개성부유수 등을 지냈고, 1513년(중종 8)에 나이가 많아 사직한 뒤 고향인 안동에 내려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유래하여 귀래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풍류생활을 하였다. 시문에 능한 분이었다.

 

 

택리지에서도 하회의 옥연정, 임청각의 군자정과 함께 안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자라고 하였다. 또한 안동팔경 중 제2경 귀래조운(歸來朝雲) 즉 '귀래정의 아침 구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고성이씨들은 안동에서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1858~1932)을 비롯해 9명의 항일독립운동가를, 청도에서 임란 5의사를 배출한 명문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안동에서는 낙포가 행단(杏壇)를 상징하는 은행나무를, 청도에서는 모헌이 군자(君子)를 상징하는 연꽃을 심어 500여 년이라는 긴 세월 잘 보존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