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관덕정순교기념관의 돌형구와 척화비

이정웅 2012. 1. 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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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순교기념관의 돌형구와 척화비

 

중구 소재 동아쇼핑 건너편 즉 보현사, 적십자병원, 관덕정순교기념관, 남산교회가 있는 일대는 높고 낮은 건물이 빽빽이 들어선 지금과 달리 옛 날에는 아미산(蛾眉山) 또는 아미산(峨嵋山)이라고 불렀다.

전자는 '누에나방의 모양처럼 아름다운 미인의 눈썹'을 뜻하는 말로 시가지 즉 읍성 쪽에서 볼 때 미인의 눈썹처럼 보이는 산이라는 뜻이고, 후자는 중국 사천성에 있는 불교의 성지로 보현보살이 발현한다는 세계문화유산의 아미산에 빌려 온 이름이다.

오대산은 문수보살, 구화산은 지장보살, 보타산은 관음보살의 성지로 아미산과 더불어 중국의 불교 4대성지다.

보현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왼쪽에서 보좌하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달리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중생들의 수명을 연장하는 덕을 가진 보살로 알려져 있다.

아미산의 가치를 가장 먼저 간파한 것은 역시 불교계였다. 이곳에 보현사를 지어 보현보살의 가피로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해탈시키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 이전 이곳은 군사훈련장, 사형장, 무사들의 시험장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었다.

 

관덕정의 유래

 

처음 이곳을 눈독을 들인 사람은 경상도 관찰사 김상로(金尙魯, 1702~?)였다. 그는 이곳에 관내에 있는 무과를 합격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모아 서로 편을 갈라 말 타기와 활쏘기를 시합을 해서 우승한 사람에게 벼슬을 주었다.

그 후 후임 관찰사 남태량(南泰良, 1695~?) 이 시험 내용을 현실에 맞도록 고치고 이어 1749년(영조 25) 관찰사 민백상(閔百祥, 1711~1761) 이 중앙의 무과시험과 달리 지방에서도 무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자를 선발하는 시험을 주관하는 도시청(都試廳)으로 관덕정(觀德亭)을 지었다.

도시(都試)란 조선 시대에 있었던 무사(武士) 선발 시험의 하나로. 해마다 봄, 가을에 치르며 중앙에서는 병조와 훈련원의 당상관이, 지방에서는 관찰사, 병마절도사가 주관해서 실시하는 시험을 말한다. 대구 관덕정에서 치른 시험 결과 성적이 우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임금이 보는 앞에서 치르는 시험 즉 전시(殿試)의 자격을 주었다.

현재 적십자병원 전후좌우의 아미산 기슭이었다. 시험이 없을 때는 세시풍속의 하나인 줄다리기도 이곳에서 행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인 1917~1919년 동문시장이 옮겨와 새 시장 또는 남문시장으로 불려오다가 1937년까지 나문시장이 남산동으로 옮겨간 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곳은 장대벌(봉덕동), 비산동의 꼬부랑개와 더불어 대구 3대 사형장의 하나였다.

 

대구관덕정순교기념관

 

1991년 1월 20일 관덕정 경당 축복 및 이윤일 성인 유해 이전 봉안식이 있었고, 5월 31일 개관을 하였다.

하느님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으시다가 마침내 순교로써 하느님을 증거 하신 이윤일 요한 성인을 찬미하고 기념하고자 건립된 것이 대구 관덕정 순교기념관이다. 이 기념관 건립사업은 대구대교구에서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맞이하여 성지개발의 첫 사업으로 시행된 것이다. 기념관의 현 위치는 현 동아쇼핑센터 맞은편 적집자 병원 뒷편에 있다.

건물모양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단청무늬색채로 된 누각이며 건물 벽은 근세 우리나라에서 외국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하여 축조된 보루와 같이 네모로 된 구멍이 있고 건물 바깥벽에는 순교자를 상징하는 돋을새김이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지하층에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경당이 있고, 경당 안의 제대을 향하여 오른편에 여러 성인들의 유해를 모신 성인유해실이 있다. 경당 맞은편에는 제1전시실이 있는데, 여기에는 대구대교구의 발전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되어 잇다.

지상 1층은 제2전시실로써 순교자를 상징하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으며, 조선조 말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치를 입증하는 척화비와 조선조 형구인 황새바위가 놓여있다. 지상 2층에는 제3전시실이 있다.

지상 3층은 제4전시실과 누각이 있다. 이 전시실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의 일대기와 대구대교구 발전사를 스테인드글라스에 잘 묘사하고 있으며, 드망즈 주교와 서정길 주교의 유품 일부가 있고, 한역 서학서를 비롯하여 각종 공과책이 있다.

-관덕정순교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옮김

특히 이 아미산 형장에서는 당시 법으로 금지되었던 많은 천주교신자들이 처형되었다.

이를 년도 별로 처형된 내용을 보면 1815년(순조 15) 을해박해 때 7명, 1827년(순조 27) 정해박해와, 1839년(헌종 5)기해박해 때 4명, 1866년(고종 3) 병인박해 때 14명 등이고 1864년(고종 1)에는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도 이곳 아미산 형장에서 참수되었다.

지금은 시끌벅적한 저자거리로 변했지만 19세기 암흑기였던 그 때 이곳은 붉은 피로 물든 곳이었다.

현재 이 기념관에는 초창기 대구지역 천주교 활동상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지만 특히 1845년(헌종 11) 독도가 포함되어 있는 김대건신부가 그린지도와 병인박해 시 천주교인들에게 밧줄로 목을 감아 처형하던 돌형구와 대원군의 쇄국정책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척화비가 있다. 이 유물들은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