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선정벌 사령관 신유를 기리는 숭무사로 들어가는 관문 북정문
내삼문인 선위문
신유장군 신도비
신유장군의 위패를 모신 숭무사
경내에 붉게 핀 배롱나무
숭무사 안내판
조선 중기의 무신 신유(1619∼1680)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신유는 인조 24년(1646)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함경북도 병마우후로 있을 때 중국 청나라의 부탁으로 효종 9년(1658) 군대를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서 러시아 군대의 배 10척과 270여 명의 군사를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이라 하며 장군은 이 원정의 내용을 『북정일기』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북정일기』는 우리나라와 러시아간에 최초의 접촉으로 현지 사령관이 쓴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사적인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1982. 8. 4)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 효종 때의 무장(武將) 신유(1619∼1680)장군을 모신 사당(祠堂)이다. 장군의 자는 경숙, 호는 봉하, 본관은 평산으로 광해군11년(1619)에 약목면 복성리 증호조참판 신우덕의 4남으로 출생하여 인조23년(1645)인 27세에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등 여러 무직(武職)을 거쳐 효종7년(1656) 12월 함경북도 혜산첨사로 부임 후 병마우후(兵馬虞後)로 있을 때 청나라의 요청을 받아 효종9년(1658) 원군을 이끌고 만주에 원정하여 흑룡강부근에서 그곳을 침입한 스테파노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을 전멸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 이를 나선정벌(羅禪征伐)이라 한다.
장군은 이 공으로 가선대부로 특진되고 경상좌도병마절도사 황해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포도대장을 지냈다
장군은 이 원정의 전말을 북정일기(北征日記)라는 기록으로 후세에 남겼다. 4개월 21일간의 전투기록을 담은 이 일기는 17세기 우리나라와 러시아간의 최초의 접촉에 대한 현지 사령관의 기록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사료로 인정되고 있는데 대구의 한학자인 이인재씨가 소장하고 있다. 장군은 숙종6년(1680)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하니 왕이 예관을 보내 치제(致祭)케 하였으며 왕의 사제문에는 장군의 흑룡강 출병과 승전을 높이 찬양하고 있다.
약목면 남계리 숭무사에 제향하고 경내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판서 이현일이 비문을 지었고 글씨는 처음에 교리 이동적이 전각하고 전의인 이재익이 음기를 썼으나 한국전쟁 때 포격으로 파손되었다. 그 후에 고쳐 세운 비석은 경산인 이상건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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