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지장도량 팔공산 북지장사

이정웅 2012. 8. 28. 15:58

북지장사

 

 

 

 

 

북지장사는 신라 소지왕 7년(485) 극달화상이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동화사 말사이나, 창건년도가 소지왕 15년(493)인 동화사보다 빨라 동화사를 짓기 전 이곳에 먼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보물 제805)로 조선 인조 원년(1623)에 지은 건물로 원래 극락전 또는 지장전으로 사용했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앞면 1칸·옆면 2칸 규모이지만 앞면 1칸 사이에 사각형의 사잇기둥을 세워 3칸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세부 처리는 조선 중기 수법을 따르고 있고 공포 위에 설치한 용머리 조각 등은 조선 후기 수법을 따르고 있다. 건물에 비해 지붕을 크게 구성하고 있는 편이며 지붕 각 모서리 끝(추녀)에 얇은 기둥(활주)을 받쳤다. 안쪽은 특이하게 정자에서 쓰는 건축 기법을 사용하였다.

불전 건축기법으로는 보기 드문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다.

또한 경내에는 신라시대에 만든 삼층석탑 2기(대구시 유형문화재 제6호)가 있다. 탑은 2층 기단(基壇)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두 탑의 규모와 형식이 거의 같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윗면에 약한 경사가 흐르고, 밑면의 받침이 4단이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다.

땅속에 묻혀 있거나 주변에 흩어졌던 것을, 1981년 새로이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대웅전 뒤쪽 땅속에서 발견되어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역조지장보살좌상(대구시 유형문화재 제15호)도 볼만하다.

얼굴은 온화한 인상으로 단정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왼손에는 보주(寶珠)를 들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의 조각선이 가늘고 약하게 형식화되어 시대가 뒤짐을 보여준다.

머리의 형태나 손에 든 보주 등으로 미루어 보아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며, 단정한 자태와 온화한 인상 등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지장보살은 부처 입멸 후부터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의 부처 없는 세상에서 중생(衆生)을 교화한다는 대비보살(大悲菩薩)을 말하며 남쪽 최정산에 남지장사사가 있어 대구는 지장신앙이 강했던 곳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