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비산동 철기시대 유물

이정웅 2016. 12. 10. 20:16

 

국보 제 137-1호 대구 비산동 출토 검 및 칼집 부속 (사진, 문화재청)

 

 

국보 제137-2 투겁창 및 꺾창(사진, 문화재청)

 

우리나라 최고(最高)의 비산동 철기시대 유물

대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등 시대별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어느 지역보다 뿌리기 깊고 선사시대부터 뛰어난 선조들이 살았던 고장이다.

청동기시대에는 동천동 유적지에서 국내 최초로 우물 유적이 출토되었고, 팔달동에서는 우리나라 철기시대의 본보기가 될 만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높은 문화수준의 선조들의 삶의 무대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비산동의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 ‘대구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부속’과 ‘대구비산동 청동기 일괄-투겁창 및 꺾창’은 각기 국보 제137호-1과 국보 제137-2호로 지정되어 서울 용산구 소재 리움 박물관에 소장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철기시대의 유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보(國寶)로 지정되었다.

이 중 국보 제137-1호인 ‘검 및 칼집 부속’은 서구 비산동의 초기철기시대 무덤에서 나온 유물로 물새 두 마리가 새겨진 검과 칼집을 장식한 부속품들로 구성되어있다.

검은 칼끝이 매우 예리한 전형적인 세형동검(細形銅劍) 물새는 칼자루 끝에 새겨져 있는데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돌려 바라보는 모습이다. 칼집 부속으로는 타원형의 칼자루 장신구 등이 있다.

다음 국보 제137-2호인 ‘투겁창 및 꺾창’ 중 ‘투겁창은’ 한자로 동모(銅鉾)라고 부르는데 나무자루에 끼워 찌르는데 사용하는 창의 일종이다. 투겁창은 모두 3점이 출토 되었는데 그 중 1점은 길이 57.2㎝로 몸통이 넓어 광형투겁창(광형동모)이라 하고 옆에 달려있는 고리에 구멍이 뚫려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실제로 무기로 사용한 것이라기보다는 행사에 사용한 의례용품으로 추정하며, 또 다른 하나는 길이 67.1㎝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투겁창 중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한다.

투겁창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동모를 본뜬 것이 대다수인데 이 투겁창은 중국적인 양식을 극복하고 거의 완전하게 한국화가 진행된 상태이다. 또 ‘꺾창’은 찍거나 베는데 사용한 청동으로 만든 초기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무기이다. 한자로는 동과(銅戈)라고 하는데 긴 나무자루를 직각의 형태로 고정시켜 어떤 물체를 찍어서 끌어당기는데 효과적이다.

전투용 무기이며 중국에서는 수레를 타고 싸울 때 상대를 공격하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꺾창과 더불어 수레의 부속품들이 같이 출토되는 사례가 드물어 사용하는 방법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