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독림가 문의순과 아홉산숲 관미헌의 칠곡 은행나무

이정웅 2018. 7. 30. 19:18

 

아홉산숲을  조성한  문의순이 처가인 경북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서 열매를 가져와 싹을 틔었다는 종택 관미헌 앞뜰의 은행나무

경북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 은행나무 아홉산숲 관미헌의 은행나무는 이 나무의 열매에서 싹이 나서 자란 것이다. 즉 관미헌 은행나무의 모수이다.

아홉산숲의 명물 대나무 숲

아홉산의 또 다른 명물 귀갑죽으 줄기

아홉산숲 조성자 문의순의 종택 관미헌 , 목재는 아홉산숲의 것이고 쇠못을 안치고 나무못을 사용해 지었다고 한다.

아홉산숲 은행나무의 유래

독림가 문의순과 아홉산숲 관미헌의 칠곡 은행나무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에는 남평문씨 일족이 4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가꾸어 온 아홉산숲이 있다. 아홉 개의 산이 이어진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KBS의 "나무야 나무야" 프로그램에 소개된 전국의 아름답고 특별한 숲 중 한 곳이다. 청소년들의 자연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 몸과 마음을 치유하려는 사람, 숲의 아름다움을 보려는 사람, 숲에서 영감을 얻으려는 예술가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찾는 전국적인 명소다.

‘군도’, ‘협녀’, ‘대호’, ‘옥중화’ 등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편백, 금강송 군락도 볼만하나 가장 매력적인 볼거리는 대숲이다. 특히, 식용으로 쓰기 위해 중국에서 들어온 맹종죽(孟宗竹)의 첫 재배지이자 질이 전국의 최고 수준이고, 다음은 줄기가 거북의 등껍질 같은 희귀한 구갑죽(龜甲竹)이다.

오늘에 이르게 산을 가꾼 분은 문의순(文義淳)이다. 정부가 산림정책을 강화하여 벌거숭이산에 나무를 많이 심던 60~70년대 이전부터 국·도유림을 위탁받아 관리했다고 한다. 그는 나무를 관리하는 이외 젖소도 키웠다고 한다.

현재 종택 관미헌 주변의 뜰은 축사의 마당이었고, 뒤에 보이는 지하창고는 냉장창고가 없던 당시 밤새 짠 우유를 보관했다가 다음날 하루에 단 한 번 뿐인 시외버스에 실어 부산으로 보냈다고 한다.

당호 관미헌(觀薇軒)은 마을 웅천리(雄川里) 미동(薇洞)을 “곰내 고사리밭”이라고 부르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은데서 “고사리조차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라고 한다. 토지가 워낙 메말라 다른 나무나 풀은 잘 자라지 아니하고 고사리만 자라 미동이라고 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설립자 문의순이 기장향교 전교를 역임할 만큼 덕망과 유학이 높은 분이라면 단순히 그런 뜻으로만 붙인 것이 아니라고 본다. 고사리는 양치식물로 제사상에 반드시 올리는 제수(祭需)이기도 하지만 그 뜻은 고결한 선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즉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사처럼 깨끗한 사람으로 살겠다는 뜻을 담았을 수도 있다.

숲을 둘러본 우리 일행을 감동케 한 것은 관미헌 정원의 아주 잘 생긴 은행나무 한그루였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1924년에 결혼한 문의순(文義淳, 1903~1983) 어른이 처가인 칠곡군, 기산면, 각산(角山)리에 신행을 다녀오면서 얻어온 은행열매로 싹을 틔어 오늘에 이른다. 같은 날 싹이 난 다른 한 그루는 현재 철마면사무소 마당에 있다. 기장 향교 전교를 역임한 문의순 어른은 6~70년대 일대의 국· 도유림 위탁관리자로 활동했다.”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라면 대구와 가까워 고향사람을 만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처가가 어느 집안일까? 열매를 따온 모수(母樹)는 지금도 각산에 자라고 있을까 하는 점과 남평문씨는 문극겸, 문익점과 같은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명문이니 그렇다면 처가도 비슷한 명문일 것인데 어느 집안의 규수를 아내로 맞았을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돌아와 좀 지난 어느 날 한 때 칠곡군청에 근무했던 한영기님과 칠곡에 살고 있는 배석운님 등에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기산면 각산리 417번지에 수형이 잘 생기고 오래되어 칠곡군의 군목으로 지정된 은행나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물어물어 찾았더니 군목답게 웅장하고 수령도 950년 된 보호수였다. 그러나 가지를 살펴보니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나무였다. 땀 흘리며 힘들게 찾아간 것이 허사가 되었다.

이번에는 같은 마을이지만 등 너머에 있는 인동장씨 집성촌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후기 영남의 유종(儒宗)으로 추앙받는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場福樞, 1815~1900)의 녹리고택과 녹리서당, 파리장서의 초안을 작성한 독립운동가 회당(晦堂) 장석영(張錫英, 1851~1929)의 녹동서당이 있는 영남의 이름난 반촌이다.

평소 배석운님과 교분이 있던 장세호 전 칠곡군수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찾아간 목적을 이야기하였더니 문 서방이라고 불리던 사위를 둔 집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사촌형 장세완님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밖에 있어 집에 들어가 족보를 보고 정확하게 알려주겠다고 했다. 후에 휴대폰으로 사진이 왔다. <인동장씨남산파세보>에 의하면 장인은 장한원(張漢遠)이고 부인은 그의 장녀로 사미헌의 종(從) 증손녀였다. 또한 문의순이 처가에서 가져간 은행나무의 모수는 녹동서당의 울타리에 있었다.

마을에는 은행나무가 단 한그루뿐이고 열매가 열린 암나무였기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문의순은 21세 장가갔다. 그는 그때 이미 나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졌고 이 나무를 뜰에 심어 어쩌면 아내로 하여금 향수를 달래게 하려한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은행열매는 단순히 모수의 대를 잇는 생명체이기에 앞서 고향의 풍광과 심지어 자애로운 부모님의 얼굴과 말씀 등 일거수일투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