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엘리자베스 여왕 2세와 하회마을 충효당 구상나무
1999년 4월 21일 대한민국의 한 외진 마을 하회(河回)는 손님 맞기로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알려져 있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영제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것조차가 세계적인 뉴스감이지만 삼천 리 금수강산 중 그 많은 곳을 제쳐두고 유독 경상도 안동의 하회마을 찾는다는 것은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여왕의 안동 방문은 중앙정부, 안동시, 마을주민이 한마음이 되어 이룩한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하회마을이 대한민국의 어느 곳보다 전통마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에 여왕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마을 이름 하회(河回)는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돈다는 뜻의 우리말 물돌이를 한자화한 표현이다. 600여 년 전 공조전서 유종혜(柳從惠)가 개척한 풍산유씨 집성촌으로 풍수지리적으로 태극형 또는 연화부수형의 길지라고 한다. 유학자 유운룡(柳雲龍)과 임란 극복의 주역인 유성룡(柳成龍) 형제가 배출되고 징비록 등 국보 2점과 양진당 등 보물 4점, 병산서원 등 사적 1점, 옥연정사 등 국가민속문화재 10점, 하회별신굿탈놀이 등 국가무형문화재, 만송정 숲 등 천연기념물 1점, 기타 지방문화재 3점 등이 잘 보존되어 있고 마을과 병산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살아 있는 야외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여왕의 방문은 우리나라와 안동을 홍보할 좋은 기회였다. 따라서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과 더불어 “고추장과 김치 담그는 모습”, “소가 논밭을 가는 풍경”, “하회탈춤 공연”, “고찰 봉정사 방문”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 여사가 준비한 여왕의 73회 생일상” 등 다양한 이벤트로 여왕을 맞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방문 기념 식수였을 것이다. 장소는 임란 극복에 앞장섰던 유성룡(柳成龍) 선생의 종가 충효당이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종 선정에 상당한 고심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1,000여 종의 자생 목본식물 중에서 가장 한국적인 수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동시의 산림과 담당 주무관 최병원(현, 대구시 녹지사무관)은 소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구상나무 4종을 선발하여 각 나무의 특성을 분석 정리하여 과, 계장의 의견을 종합한 보고서를 정동호 시장에 올려 최종 낙점받은 나무가 4번째로 추천한 구상나무(Korea Fir)였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선비들이 좋아했던 매(梅), 난(蘭), 국(菊) 죽(竹) 등 사군자(四君子)와 은행나무, 흔히 기념 식수로 선택되는 살아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주목 등을 제외한 것은 최 주무관의 나무문화에 대한 높은 식견의 결과로 보인다. 시장이 선택하면서 소나무를 제외한 것도 퍽 흥미롭다. 많은 기관단체가 청사준공, 책임자의 이취임식 등의 기념 식수에 소나무를 많이 심는데 대체로 늘 푸르러 충절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대중화되었고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좋아하는 나무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이런 국민의 정서와 달리 한때 세계공통어가 되다시피 한 영어 이름이 재퍼니즈 레드 파인 (Japanese red Pine, 2015년 Korean red Pine 변경됨) 즉 “일본 적송”으로 불린 적이 있어 외국인에게 한국을 상징한다고 보기에 다소 문제가 있다. 여왕의 기념 식수 목(木)은 이러한 점을 깊이 고려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종 “구상나무(Korean Fir)”를 선택했다.
안동시가 세워둔 안내판에는.“--구상나무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 고유 수종으로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이다. 한라산과 지리산 등에 자생하고 있는 한대(寒帶) 수종인 구상나무의 열매는 원통형으로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떨어지는 순간 조각조각 흩어져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할 때 옻을 걸어 놓는다는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구상나무는 힘찬 기상과 추위를 견디는 굳건한 힘을 지니고 있어 우리 민족의 외유내강한 모습과 같으며 선녀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은 여왕의 품격을 나타내고 있다.”라고 했다.
최병원 당시 담당에 의하면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의 모 농장에서 가져왔으며 고산식물을 평지에 심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배수가 잘되게 유공관을 묻고 자갈, 모래, 정원용으로 사용하는 특별한 흙으로 정성을 다해 심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은 지 6개월 후에 죽었다. 이런 불상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출입문을 잠그고 수형이 같은 대체 목을 심었으나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제 심은 지 21년. 본디 살던 곳과 다른 환경을 극복하고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여러 수종 중에서 구상나무(Abies koreana)를 선택한 것은 가장 한국적인 마을 하회를 찾은 여왕의 방문 목적과 딱 들어맞아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구상나무는 왕벚나무를 발견한 다겟(Taquet)과 포리(Faurie) 신부에 1900년대 유럽에 전해져 크리스마스트리 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며 이후 미국 아놀드 수목원의 윌슨(Wilson, 1876~1930)이 1915년 제주도 한라산에서 채집하여 1920년 신종으로 학계에 발표함으로 존재가 알려졌다. 다만 자생지가 한라산인지 그 외 다른 산인지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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