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이몽룡의 실제 인물 계성 성이성 종택(국가민속문화재 제 171호)
청백리 계서 성이성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
춘향전 이몽룡의 실제 인물 계서 성이성과 굽은 소나무
경상북도 봉화는 군정 구호가 파인토피아(Pinetopia)이다. 즉 소나무(Pine)와 유토피아(Utopia)를 합성한 말로 소나무 특히, 금강송(봉화에서는 춘양목이라고 한다)이 울창한 이상향 즉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이해하면 맞을 것 같다. 강릉시 또한 “솔향 강릉”이다. 두 지자체 모두 소나무를 지역의 정체성으로 삼은 점이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쌍수를 들고 지지할 입장이다.
이런 청정 봉화가 힐링의 공간으로 각광(脚光)을 받고 있다. 그러나 60~70년대 관선 군수 시절만 해도 울고 갔다 울고 오는 지역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오지였다. 즉 부임하러 가는 길이 너무 험하고 멀어서 울고 갔으나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주민들의 따뜻한 정이 고마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운다는 뜻이다.
조선 시대 봉화는 은둔하고 싶어 하는 선비들이 선택하는 산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대표적인 분들이 소위 태백오현(太白五賢)이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 대명 절의를 지키며 태백산 아래로 찾아든 정민공(貞敏公) 강흡(姜恰, 1602~1671), 개절공(介節公) 홍우정(洪宇定, 1595~1656), 각금당(覺今堂) 심장세(沈長世, 1594~1660), 포옹(抱翁) 정양(鄭瀁), 손우당(遜愚堂) 홍석(洪錫, 1604~1680) 이 그들이다.
이들은 현실과 타협만 하면 권력과 부를 누릴 사람들이다. 그러나 세속적인 명리에 연연하지 아니하고 책을 읽으며 자연을 벗 삼아 순명(順命)하며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봉화가 전국에서 정자가 가장 많은 것도 안정적으로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적당한 토지와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은 강과 많은 선비들이 은거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본디 이름난 인사들도 많이 있으니 그중에서 문신(文臣)이면서도 명작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李夢龍)의 실제 인물이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이다. 종택을 지키고 있는 종손 성기호 님은 『춘향전』은 서양의 연애소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그 구성내용이 더 극적이라고 한다. 다만 음악, 회화, 소설 등 예술 전반이 서양 중심이 되면서 평가가 절하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몽룡 즉 계서 성이성은 1595년(선조 28) 영주시 동면 문단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임란 공신 성안의(成安義, 1561~1629)의 3남으로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 사간, 홍문관 교리 응교와 합천 현감을 비롯해 담양·창원 부사. 진주 목사, 강계 부사 등 내외 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치적을 쌓으니 담양에 “청백인정비(淸白 仁政碑), 창원에 창백인정비, 진주에 청덕유애비(淸德 遺愛碑), 강계에 청덕인정비가 세워지고, 경상도 진휼 어사, 호서 암행어사, 호남 암행어사 2회 등 왕의 특명을 받아 국정을 감찰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1664년(현종 5) 향년 70세로 별세하니 홍문관 부제학의 증직을 받았다. 1695년(숙종 21) 청백리에 녹선 되고 1786년(정조 10) 오천서원에 배향되었다.”
계서는 암행어사로 본분을 다하고 고을의 수령으로 곳곳마다 선정비가 세워질 정도로 치적을 쌓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애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바로 계서라는 점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계서가 이몽룡의 실제 인물이라는 근거는 아버지가 소설의 무대인 남원고을의 수령을 지냈을 뿐 아니라, 그 역시 호남 암행어사를 두 번이나 역임해 소설의 줄거리와 비슷하고 예나 지금이나 탐관오리를 지칭할 때 흔히 이야기되는 한 편의 시
두루미 안의 맛있는 술은 뭇 사람의 피요 / 拵中美酒千人血
상 위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며 / 盤上柱肴萬人膏
촛물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 燭淚落時民淚落
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도다. / 歌聲高處怨聲高
라는 시도 누가 작자인 줄 모르는 소설과 달리 『계서 선생 일고(溪西先生逸稿)』와 4대손 성섭(成涉)의 『필원산어(筆苑散語』에 원문이 실려 있으며, 연세대학교 설성경 교수가 『춘향전의 비밀, 2001,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논증했다.
400여 년 전의 계서가 이 시대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가 살았던 계서당 종택(국가민속문화재 제171호)과 소설 속의 주인공 춘향과의 맹세를 저버리지 않은 로맨티스트, 탐관오리를 혼내 준 암행어사라는 것 이외 한 그루 나무와 일단이 숲을 남겼으니 종택 뒤 안 서쪽, 그가 목마처럼 타고 놀던 굽은 소나무(봉화군 보호수)와 담양 부사 재직 시 수해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방을 쌓고 흙의 유실을 막기 위해 심은 관방제림(官防堤林, 천연기념물, 제 366호)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관방제림은 조선 중기에 조성한 몇 안 되는 현존하는 호안림(護岸林)이라 점에서 그 가치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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