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70년 전 대구팔경

이정웅 2022. 2. 1. 09:39

제1경 달성청람
제2경 남산(앞산) 춘색
제3경 금호어적
제4경 용산(외룡산) 귀운
제5경 신천제월
제6경 동사(동화사) 모종
제7경 영지(영선지) 추연
제8경 고야화서

대구향교 조기훈 장의로부터 고그람개가 어디를 말하느냐고 전화가 왔다. 30여 년 향토사를 연구한답시고 대구를 누볐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라 난감했다. 출처가 어디이며 관련 자료를 좀 더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대구향교 약사(略史)위치편을 찍어 보내왔다.“--대구의 지세는 남에는 비슬산 준령이 뻗어서 대덕산(앞산의 별칭)이 솟아있고, 서쪽에는 와룡산이 의젓이 자리 잡았고, 북에는 팔공산이 높게 둘러싸고 있다. 그 속에 신천(대구천)이 관류하여 동에서 흘러들어오는 금호강과 합류하여 고그람개를 지나 강창을 거쳐 강정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천과 금호강 합류 지점에서 하류의 강창 사이의 어느 곳을 말하는 것 같은데 현재 고그람개라고 불리는 곳은 없다. 개는 개울의 준말이기도 하고, 강변의 논밭이라고도 하는바 첫 번째 개울이라고 한다면 그사이에 팔거천, 이언천, 달천, 이천, 달서천이 있으나 어느 한 곳 고그람개라고 불린 적이 없다.

그렇다면 둘째 강변의 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고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고장대구, 대구직할시 교육위원회, 1988만평네거리 편에 삼영초등학교(현재 북구 사수동으로 이전) 부근 즉 노원3가동 일대가 고그랑개 (갯밭)”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구향교 약사의 고그람개와 만평네거리 일대의 고그랑개을 달리 표현했을 뿐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 이런 생각을 하며 구본욱 박사로부터 받은 대구팔경시집(大邱八景詩集)이 떠 올랐다.

이 시집은 1949년 대구향교에 출입하든 선비들이 미리 시제 여덟 곳 즉 달성청람(達城晴嵐), 남산춘색(南山春色), 금호어적(琴湖漁笛) 용산귀운(龍山歸雲) 신천제월(新川霽月), 동사모종(桐寺暮鍾), 영지추연(靈池秋蓮) 고야화서(古野禾黍)를 선정하여 182명이 지은 시를 모아 춘호(春湖) 김병우(金炳釪, 1888~?)8곳의 그림을 그려 넣고 임제(臨濟) 서찬규(徐贊奎)의 손자이자 파리장서 서명자인 성암(性菴) 서건수(徐健洙, 1874~1953, 건국훈장 수훈)가 서문을, 송오(松塢) 김성곤(金聲坤, 1890~?)이 발문을 써서 1951년 펴낸 책이다.

이 시집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전 팔공산문화포럼 홍종흠 회장이 문석기의 소장본을 얻어 대구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구본욱, 최오현, 전일주, 조순 등 네 사람이 국역해 2015년에 발간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대구의 명승지를 예찬한 시는 15세기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대구십경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시집이 사가의 시와 몇 가지 다른 점은 첫째 시기적으로 500년 차이가 나고, 둘째는 사가(四佳)가 혼자 쓴 작품과 달리 182명이 참여했고 셋째 금호강, 입암, 연구산, 금학루, 남소, 향산, 동화사, 팔공산, 침산 등 10곳이 아니고 달성토성, 앞산, 금호강, 와룡산, 신천, 동화사, 영선못, 고야들 등 8곳이며 넷째는 금호강과 동화사만 같을 뿐 대상지가 각기 다른 점이다. 이는 50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산천이 의구(依舊)한 것이 아니라 허물어진 곳도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경관을 보는 가치관도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8경의 고야(古野)들은 7경 영선못과 더불어 지금은 사라진 곳인데 고그람개를 찾으면서 대구팔경의 고야들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품의 분량이 많아 상권에 87명의 시 696수를, 하권에 95명의 760수를 게재할 계획이었으나 상권 출판비만 지원받는 데 그쳐 하권에 실릴 작품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대구문화재단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 ()박사는 이들은 모두 한문 시대 대구의 마지막 문사들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은 특이하게도 조선 왕조시대와 일제강점기, 해방 대한민국체제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대구팔경한시집 국역은 이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