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신천의 유래

이정웅 2006. 7. 20. 22:25

 

신천(新川)의 유래



최근 신천에 녹조(綠藻)가 발생하여 많은 시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천은  태초부터 범람으로 형성된 퇴적층이 기름져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였으니 그 흔적이 지금도 고인돌로 남아 있다. 따라서 어떤 학자는 침산과 연암산에서 발굴된 유물과 아울러 신천일대가 달구벌 문화의 발상지라고도 한다. 그러나 산업화로 시가지가 확대되어 주변의 농경지가 택지나 공장용지로 바뀌면서  건천(乾川)으로 변했다. 최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 문제가 시정부의 주요시책으로 대두되면서 신천하수처리장의 물을 끌어올려 유지수를 확보하고, 둔치에 꽃과 나무를 심어 운동과 휴식(休息)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고무 보(洑)에 담긴 물이 썩어 냄새가 나는 등 문제가 발생하자 다시 유량의 절반 정도를 금호강물로 채워 수질이 좋아지자 어종(魚種)이 다양해먹이사슬로 많은 종류의 새들이 날아들고, 1급수에만 산다는 수달이 서식하게 되어 죽은 강에서 살아 있는 강으로 변해 시민들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신천에 대해 대구시에서는 관련 자료에 정조 대 “판관(判官) 이서(李漵)라는 분이 사재(私財)로 제방을 쌓고 물줄기를 오늘날과 같은 형상으로 돌려 새로 내를 만들었기 때문에 새신(新) 내천(川) 즉 "신천(新川)"이라고 한다.”고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장비도 없었을 그 때 공금(公金)도 아닌 사재(私財)로 하천을 만들만큼 대규모 토목사업이 불가능했을 것이며, 특히 판관 이서가 재임할  때보다 무려 2세기 이상 앞선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경상도지리지>의 대구부 산천조(山川條)신천은 “팔조령에서 발원하여 금호강으로 유입된다”는 기록이 있어 이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러한 역사적인 기록을 검증해 볼 때 신천은 오늘날 수성구와 중구 사이에 있는 내 즉 샛내(間川)를 한자화할 때 "새내(新川)"로 잘못 표기한 것을 알 수 있다.

신천은 ‘새로 만든 내’가 아니라 ‘~과 ~의 사이에 있는 샛내"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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