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현제명과 오페라도시 대구

이정웅 2006. 7. 20. 22:27

아름다운 저녁노을

현제명과 오페라도시 대구




요즘, 공원이나 유원지를 다녀 보면 종전과 다른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어 나들이가 즐거워진다. 대구시가 ‘멜로디가 흐르는 도시’를 지향하면서 거리 음악회를 열어 사람이 모일만한 곳이면 어딜 가도 즐거운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은 정서순화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누구나 즐기고 싶은 예술이나, 흥겨울 땐 어깨춤을 추며 직접 동참할 수 있는 농악(農樂)과 달리 주로 실내(室內)에서 열리는 서양음악은 입장료도 만만치 않지만, 옷은 무엇을 입고 가야할지, 가서 어느 때 박수를 쳐야할지, 등 격식이 까다로워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번에 진행 중인 거리음악회는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무시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앉거나 서서 감상할 수 있어 훨씬 친근감을 준다. 따라서 시민정서순화는 물론 음악 인구의 저변확대에 크게 도움이되리라 생각된다.

대구는 미술. 문학. 서화 등 우리나라 어느 도시에서도 유례(類例)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예술가를 배출한 예향으로 음악(音樂)도 예외가 아니다.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로 시작하는 ‘켄터키 옛집’을 번역한 박태원(1897~1921), ‘사우’ ‘뜸북새’ 등을 작곡한 한국합창운동의 선구자 박태준(1900~1986), 이른바 국민가곡으로 불리는 ‘고향생각’ ‘산들바람’을 작곡한 양악사의 큰 별 현제명(1903~1960), ‘금잔디’ ‘노래의 날개’를 작곡한 한국 예술가곡과 음악학의 선구자  김진균(1925~1986)은 대구출신으로, 권태호(1903~1972)는 안동, 하대응(1914~1987)은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우리나라와 대구음악을 빛낸 분들이다. 이번 ‘멜로디가 흐르는 도시’ 역시 이 분들이 뿌린 씨앗이 자라는 토양 위에서 전개된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향토 출신 현제명은 홍난파와 더불어 한국 음악계를 이끌어 온 대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춘향전’을 작곡한 분이다. 그런 분이 단지 일제 강점기에 음악활동을 했다하여 친일파로 매도되어 그의 음악이 잉태된 고향(故鄕)에서 조차 외면 받아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다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작품이 공연되지 않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애석하기 그지없다.     

 

현제명[玄濟明]
인쇄하기 


본문


1902 경북 대구~1960. 4 서울.

작곡가·성악가.

현제명
기독교도로서 사업을 하던 부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회 성가대에서 서양음악을 익혔고,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면서 서양선교사에게서 피아노·바이올린을 배웠다. 전주 신흥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있다가 숭실전문학교에서 알게 된 레인보우레코드회사 사장인 R. 하버의 추천으로 무디 성경학교에 입학해 성서와 음악을 배웠다. 1928년 시카고에 있는 건(Gunn) 음악학교에서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미국 유학시절에 〈고향생각〉·〈산들바람〉 등의 가곡과 찬송가를 작곡했다.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영어교수로 있으면서 음악부에 관현악단과 합창단을 만들고 공회당에서 최초의 공연을 가지는 등 음악 보급에 힘썼다. 1930년대에는 빅타레코드사와 컬럼비아레코드사에서 직접 노래를 불러 음반을 취입했다. 1932년 2월 조선음악가협회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1933년 홍난파와 함께 작곡발표회를 가졌다. 1937년 미국 건 음악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가 유학가기 이전부터 박사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그가 쓴 박사 학위 논문이 어느 글에서도 확인되지 않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44년에는 일제의 어용음악가 조직인 조선음악가협회와 경성후생악단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친일행위를 했다. 1945년 지금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모체인 경성음악전문학교를 설립했다. 8·15해방 후 한민당 당원으로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고, 1950년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향전〉을 총지휘했으며, 1954년 고려교향악단을 조직했다. 1955년 마닐라 음악회의에 참석, 1958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국제음악회의에 참석했다. 1955년 예술원상 등을 받았고, 주요 작품으로는 오페라 〈왕자호동〉, 가곡 〈오라〉·〈니나〉·〈나물캐는 처녀〉, 국민가요 〈희망의 나라로〉·〈조선의 노래〉 등이 있다.

       

'대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의 몽마르뜨  (0) 2006.07.22
대구,대구,대구  (0) 2006.07.22
2007년과 대구  (0) 2006.07.20
신천의 유래  (0) 2006.07.20
고모령 유래의 진실  (0) 200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