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고모역사 : 작사자는 이 역 이름을 보고 노랫말을 썼다고 했다.
해방 후 한 때 크게 유행했던 비 내리는 고모령은 대구를 노래한 몇 안 되는 유행가다.
어느 지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일은 그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각 자치단체들은 앞 다투어 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거나, 인기 연속극, 영화촬영장을 유치하고 있다. 대구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 작곡가에게 의뢰해 ‘대구의 찬가(?)’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호동아가 가사를 쓰고 박시춘 작곡하여 가수 현인이 불렀던 ‘비 내리는 고모령’은 대구 시민들에게는 여간 고마운 노래가 아니다. 그러나 이 노래에 대해 작사자가 모 신문에서 밝혔듯이 해방 후 가난을 면하기 위해 정든 고향과 자애로운 어머니와 헤어지는 모습을 보고 가사를 쓴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경부선 열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역 이름을 보고 우연히 떠올랐던 영감(靈感)을 노랫말로 적었을 뿐 그 곳에 노랫말처럼 물방앗간이 있는지 유래가 어떤지는 몰랐다고 한다.
더 아쉬운 점은 기존에 알려진 많은 자료들이 “동생과 형이 싸우는 것을 보고 실망한 어머니가 집을 떠나면서 고갯마루에서 뒤 돌아보아 뒤돌아볼 고(顧), 어미 모(母)의 고모령이 되었다”는 고모령의 유래다. 그러나 실제 주민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옛날 이 마을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지만 금실(琴瑟)이 좋은 부부가 예쁜 사내 아이 하나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병석에 눕게 되자 효심이 지극한 부부는 정성을 다해 간병했으나 좀처럼 병세가 나아지지 않았다. 때 마침 탁발을 하러 온 스님이 아이를 삶아 어머니께 드리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고민에 빠진 부부는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으되 어머니는 한 번 돌아가시면 평생다시 볼 수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마침내 아이를 희생시키기로 하고 큰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기다렸다가 밖에서 놀다 오는 아이를 안고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으려는 찰나 아이가 힐끗 어미를 돌아보았으나 솥뚜껑을 닫고 한동안 멍한 마음으로 계속 불을 지피고 있는데 조금 전 가마솥에 넣었던 아이가 ‘엄마’ 하면서 사립문을 열고 들어오자 깜짝 놀란 어미가 아이를 부등켜안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더니 한결같이 조금 전 솥에 넣은 아이는 부부의 지극한 효심에 탄복한 하늘이 보낸 산삼이 천년을 묵어 아이로 환생한 동삼(童參)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돌아볼 고(顧)어미 모(母)는 동삼이 가마솥에 들어가기 전 어머니를 돌아본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위치가 다른 곳에 노래비가 세워지고 젊은 부부의 지극한 효심에 대한 이야기도 점점 잊혀져 안타까우나, 다만 노래만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어 다행(?)이다.
시대상황을 반영한 유행가사도 좋지만 효성이 지극한 부부이야기도 우리들의 감슴을 찡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