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정구선생이 도동서원이 사액된 것을 가념해서 심은 나무동
서원 입구 수월루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기리는 도원서원 중정당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은 한강 정구 선생을 일러 “영남 상·하도 학문을 도산(陶山)과 덕천(德川) 두 사문(師門)으로부터 흡수 소화하여 자기를 대성시킨 분이 바로 한강 정구선생이다. 남명적 체질위에 퇴계적 함양(涵養)을 가했다.” 고 했다.
영남지역에 특히 성리학자가 많이 배출된 것은 고려 말 야은 길재(吉再)가 새로 개국한 조선에 벼슬살이를 하지 아니하고 고향 선산에서 김종직의 아버지인 김숙자 등 후학을 많이 양성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16세기 지리산을 거점으로 한 조식(曺植) 선생이 남명학파(南冥學派)를, 소백산을 거점으로 한 이황(李滉)선생이 퇴계학파(退溪學派)를 형성하여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기 때문이다.
양 학파를 주도하였던 선생의 가치관에 따라 학풍도 달랐으니 이를 두고 지리산 덕천을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는 의(義)를, 소백산 도산 중심으로 한 퇴계학파는 인(仁)으로 특징지어진다고 한다.
경쟁적인 학문 연구를 통해 성리학 발전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경쟁이 지나친 나머지 대립한 때도 있었다.
이러한 양 학맥을 아우르고 발전시킨 이가 바로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선생이라고 앞에서 이익이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영남학파는 한강에 의해 완성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선조 40년 (1607) 동방 오현의 수현으로 존경받는 한훤당 김굉필(金宏弼1454~1504) )선생을 기리는 도동서원이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세워져 조정으로부터 사액을 받으니 그를 기념하기 위해 심은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다. 400여 년이 되는 지금 서원의 수문장 역할을 고 있다.
(대구시에서 김굉필나무라고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으나 서원 설립을 주도했던 한강 정구가 심었다고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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