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구수목원에 분재를 기증한 고(故) 박상옥님을 만난 것은 꾀 오래되었다. 대구시 서구 부구청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떠나신 정시식님, 대구야생초우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하시다가 지금은 고문으로 있는 모규석님, 계명문화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야생화 연구에 독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김용원님, 분재협회 대구지회장으로 있으면서 대구시립종합복지회관의 분재 강사였던 박상옥님, 나 등이 모여 전국에서 처음으로 야생화를 사랑하는 단체인'대구야생초우회' 발기인 모임을 개최할 당시였다.
그때가 1990년도이니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다.
첫인상은 웃을 때 눈가에 잔주름이 있는 것이 어릴 때에는 개구쟁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전체적인 이미지는 소박하고 순수하며 낙천적으로 보였다.
모임이 결성되자 그는 부회장, 나는 총무를 맡았다.
월례회 때마다 만났지만 야생화보다는 오히려 분재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가끔은 그가 애써 가꾸고 있는 화원 소재(所在) 솔뫼분재원으로 초청해 커피를 직접 끓여 주기도 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그는 그림에 심취해 있었다.
모 대학 평생교육원에 적을 두고, 그림 얘기를 자주 했으며 또한 공모전에서는 입선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 그가 평소 아끼고 사랑하던 분재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애통한 마음도 컸지만 당시 수목원 조성에 매달리고 있던 나는 죄송하게도 분재 걱정이 앞섰다.
그 많은 분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평소 언젠가 힘들어 관리하기가 어려우면 공익기관에 기증하겠다는 생각을 떠 올리며 수목원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그러나 슬픔에 잠겼을 미망인에게 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가슴만 태우고 있던 중 여류 야생화 모임 회원인 김진숙 여사를 우연히 만나 내 속내를 드러내 보였더니 기꺼이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하였다.
그 후 미망인 김경자 여사로부터 수목원에 기증하겠다는 전화가 왔으며 대작(大作) 몇 점은 고인이 평소 가까이 지낸 분과 삼촌들이 이미 가져갔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담당자인 신백호님으로 하여금 가격산정을 해보라고 하엿더니 1억 2천만원에 상당했다. 아울러 기증서 작성 등 행정조치를 취했다.
분재를 인수하기 위해 고인의 숨결이 스며 있던 ‘솔뫼분재원’을 다시 찾는 내 마음은 무거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더 쓸쓸하게 하는 것은 고인의 손길이 멈춘 분재들이 가지가 멋대로 뻗어 본래 모습을 잃어 가고 어떤 분재는 물을 주지 않아 바싹 말라 물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며칠만 더 늦추면 본래의 모습이 망가져 분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것 같아 마음이 다급해졌다.
또 분재원이 도심지에서 벗어난 변두리에 있을 뿐 아니라, 고가품도 많아 분실이 염려되었다.
우선 구두로 승낙 받고 인부들을 동원해 가급적 빨리 수목원으로 옮기고 그 사실을 간부회의에서 자랑스럽게(?) 보고했으나 오히려 꾸중만 들었다.
아직도 그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아마 그러한 큰일을 미리 보고하지 않고 일개 사무관이 주제넘게 처리한 것이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처리과정이야 어떻든 지금 수목원에 전시되어 있는 분재들은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고인(故人)도 만족해 하리라고 믿는다.
비록 작지만 아담하게 기념비도 세웠고 평소 고인이 좋아했던 물개 모형의 수석을 비(碑) 옆에 꼭 놓아 달라던 미망인의 말대로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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