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에 잎을 내고 자라다가 6월경에 열매를 맺고 죽는 소리쟁이
전국에서 최초로 쓰레기 쓰레기 매리장을 활용해 조성한 대구수목원 연간 120만명이 찾는 대구의 새로운 명소
관련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관심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시인, 화가, 음악인들 중에도 의외로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고, 특히 콘크리트 숲에서 꽉 짜여진 학교수업으로 할미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자연학습장을 하나 만들어 마음껏 뛰놀게 하고 싶었다.
물론 사비(私費)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고, 시의 살림살이에서 매년 얼마씩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어느 도시의 식물원보다 짜임새 있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은 늘 예산 획득에 실패해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 민선 시정부가 들어서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왔다. 문 전 시장께서 공원․녹지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셨을 뿐 아니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훌륭한 수목원을 만들어 보라는 구체적인 지시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면 누구나 체험하는 일이지만,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최고 책임자의 지속적 관심과 뒷받침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이러한 여건 변화에 고무되어 쓰레기 매립지로 쓰다가 황무지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대곡동 7만여 평의 부지에 수목원을 조성하기 위해 결재를 받고, 예산을 확보해 경북대학교 ‘환경녹지연구소’에 용역을 주어 타당성 검증을 마쳤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다른 수목원과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우리 민족의 정서가 배어 있지만 주변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야생화와 약전골목으로 대표되는 지역 한방산업을 알리기 위해 약초원 조성을 특화(特化)해 실시설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모 환경단체가 유해 가스가 발생하고, 침출수가 나오며, 지반의 침하가 우려되며, 투자비가 과다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성명서를 각 언론사에 배포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고, 일부 신문과 TV가 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하게 되니 걷잡을 수 없이 일이 확대되어 마침내 환경단체 관계자와 용역을 수행한 경북대학교 환경녹지연구소의 관련 교수 간의 토론을 주선해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 해소방안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사람에게 해롭거나 식물의 자람에 나쁜 가스는 일반지역보다 오히려 낮게 검출되고, 토양도 유기질과 인산(燐酸)성분이 다소 부족하나 나무 생육에는 크게 지장이 없으며, 침출수 역시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배수구를 만들면 지표수(地表水)가 효과적으로 처리되어 양을 줄일 수 있으며, 투자비는 5년 동안에 투입되는 합계가 122억 원으로 매년 30억 정도이다. 반면에 청소년들의 정서 순화에 기여하고, 새로 입주한 상인․대곡지구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되며, 그 동안 악취와 먼지로 고통 받은 인근 주민들에 대한 보상은 물론 버려진 땅을 재활용해 지역개발을 촉진하며, 무엇보다 식물을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의 숙원사업이 해결된다는 점, 대구보다 더 작은 도시 제주나 진주 같은 도시에도 있을 뿐 아니라, 민간인도 조성하고 있는 마당에 명색이 우리나라 3대 도시로 불리는 대구에 수목원 하나 조성하는 것이 뭐 그리 큰 문제가 되랴 싶어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런 와중에 환경단체 측의 우려가 지나친 억지라는 사실을 ‘소리쟁이’라는 한 귀화식물이 대변해 주어 나름대로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었다.
환경단체에서는 시의 계획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폭로(?)하기 위하여 소위 폐기물 관련 전문가인 서울 소재 모 대학의 교수를 초빙해 와서 현장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말라 죽어 있는 ‘소리쟁이’를 발견하고는 가스 피해로 고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자, 그를 수행하던 관련자들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온전한 땅과 달리, 쓰레기를 매립했던 곳인 만큼 식물에 해가 있을 것이라는 심증은 가나 특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그들로서는 이 풀이 바로 현행범(?)이었다.
조성 예정지는 수년 동안 놀리고 있었기 때문에 잡초가 무성했을 뿐만 아니라, 달맞이꽃, 개망초, 전동싸리 등 귀화식물이 번성했다.
소리쟁이 역시 그 많은 귀화식물의 한 종으로, 일반적으로 가을에 열매가 익는 다른 식물과 달리 6월 중하순경 열매를 맺고 뿌리는 살아 있되 열매와 잎이 붉게 마르는 식물이다.
그런데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그 교수가 이러한 식물에 대한 기초지식도 모르고 가스의 피해로 말라죽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으며,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반대논리가 지나치다는 것을 극명하게 대변해 주었다.
환경단체의 반대가 계속되고 이를 언론이 뒤따라 보도하게 되자 혹자는 앞산이나 두류산 같은 땅이 좋은 곳을 두고 왜 하필이면 쓰레기 매립지를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조성비만 해도 100억 이상 드는데 여기에 부지 매입비까지 추가한다면 사업비가 많아 의회의 동의를 얻기 어렵고, 또 수목원이라는 것이 나무 종류만 모아 놓는 것으로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재, 난 등 식물에 대한 사회교육과 그린스쿨(Green School)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민들과 청소년의 정서 순화에 기여해야하는 점에서 전문가 집단을 확보하고 있는 수목원에 조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지금까지 버려진 땅으로 인식되던 쓰레기 매립장을 매립하기 이전보다 더 좋은 상태로 새롭게 재생시켰다는 점, 극단의 지역이기주의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쓰레기 매립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매립 이후 활용방안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폐기물 처리정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쓰레기가 매립된 땅에 수목원을 조성하는 사업은 국가적으로도 기대가 큰 사업이었기 때문에 환경부의 최재욱, 김명자 두 장관이 직접 다녀갈 정도로 관심을 보였었다.
환경단체의 반대가 언론을 통해 집중 보도되자 한 시민이 편지를 보내왔다.
이정웅 장장님 귀하!
나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봄인지 여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계절은 어느덧 한여름으로 접어든 것 같습니다.
바쁜 업무에 수고가 대단히 많습니다. 대곡동 쓰레기장에 수목원 조성사업을 본청에서 하는지 임엄시험장에서 하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마는, 수목원을 조성하는 것이 논란이 되어 다소 마음이 가볍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뜻이 있고, 좋은 일을 하더라도 다소간 반대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수목원 조성사업에서 장장님의 의견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7만여 평에 가스가 조금 분출된다고 잡초가 무성한 폐허로 버려두는 것보다는 다소의 예산이 들더라도 쓰레기장을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조성하는 것은 무척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이란 이 선생님처럼 사심 없이 오직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공적인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다 보면 다소의 계획차질이나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누구라도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장장님 계획대로 외국의 사례와 같이 아름다운 수목원을 조성하여 대구의 명물로 만들어서 많은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아름다운 휴식처로 조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지금 반대하는 사람들도 면목이 없어지고 장장님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이번의 사소한 논란이 수 십 년 후 더욱 아름다운 수목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도록 더욱더 조사하고 연구하여 장장님이 구상하고 계시는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8. 6. 18
대구시 동산동 623번지 이○진 올림
410 여만 톤의 쓰레기가 매립된 곳인 만큼 전연 문제가 없을 수 없을 것이나 문제점이 발견되면 보완해 나가면 될 것이다. 또한 지하철 1호선 종점에서 불과 1km 정도 근접해 있고, 앞산 순환도로와 상화로를 이용하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더구나 인근에는 사적(史蹟)인 진천동의 선사유적공원과, 명심보감의 산실인 인흥서원, 민속자료로 지정된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시민들의 애환이 서린 화원유원지, 민족시인 이상화 일가의 묘소 등이 있어 이들 문화유적과 연계해서 개발한다면 좋은 관광지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비 39억 원을 지원받아 시비(市費)의 부담을 줄였다.
환경․시민단체가 반대하고 언론이 힘들게 했으나 낯모르는 한 시민이 보낸 편지가 큰 용기가 되었다.
공무원을 그만 둔 어느 휴일 모처럼 수목원을 찾아 사무실로 올라가니 일직을 하던 두 분이 불쑥 나타난 나를 반갑게 맞아 주며 내주는 차를 마시며 벽을 바라보니 ‘우공이산(愚公移山)’ 이란 목각(木刻)이 눈에 들어왔다.
환경・시민단체들로부터 한창 공격을 받고 있을 때, 모 장애인협회에서 회원들이 손수 만든 제품 한 점을 사 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와서 샀던 것이다.
무슨 내용을 썼으면 좋겠느냐고 물어 엉겁결에 한 답이 벽에 걸린 우공이산이었다. 수목원을 조성하는 일이 비록 힘들었다 하였어도 어찌 우공이 산을 옮긴 일에 비유하랴만 당시는 너무 힘들었다.
실내를 오가는 직원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하고많은 글 중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을 택했는지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 있을까만 욕심 같아서는 전 직원이 이 뜻을 헤아려 어렵게 조성된 수목원관리에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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