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30여년을 공직에 몸담았다가 모(某) 사립대학에 재취업하여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기왕에 잘 조성된 캠퍼스를 보다 아름답게 꾸며 면학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 기여하고, 지역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여 학교의 이미지를 한 단계 높이고자한 총장의 복안(腹案)이었던 것같다.
낮선 곳이라 적응에 힘들 것을 미리 예견 했으나 삭막한 도시의 대명사로 알려진 대구를 전국 제일의 녹색도시로 만든 경험이 있고, 비록 보잘 것 없는 지식이지만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젊은이 들을 위해 쓰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자 했다.
공직 그 것도 간부공무원으로 누렸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야한다는 선배공무원들의 충고를 가슴 깊이 새기며 새롭게 시작되는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다른 조직의 과장급인 팀장보다 상위(上位) 직인 부장(部長)과 함께 사무실을 쓰도록 하여 대내외적으로 동등한(?) 직위라는 공표(公表)를 하고, 사택(社宅)까지 주어 우대해 해주는 것 같았으나, 이런 외양(外樣)과 달리 실무자들이 은근히 훼방을 놓았다.
유능한(?)한 일꾼이 새로 왔으니 변화되는 모습을 총장이 빨리 보고 싶어 이것저것 일을 시켰으나 기존 담당자가 규정에 맞지 않다거나, 자기에게 넘겨달라고 하여 나의 역할이 애매해지기 시작했다. 오랜 행정 경험을 한 나의 입장에서 볼때 어떤 일이든 그것을 입안(立案)한 당사자가 직접 처리하는 것이 정확도가 높고, 추진시간이 빨라지나 실무자드리 비협조적이라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처럼 가능한 방법을 총 동원하여 보조를 맞추려고 애를 썼다. 또한 직위가 부여되면 그에 걸맞게 해당 업무의 예산을 집행하고 구성원들을 지휘· 감독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정부조직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 드는 처사였다. 이의를 제기했으나 그 때마다 담당 부장이 업무 분장을 새로 해 일할 여건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였으나 계약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및 음성 자동안내 식물원을 조성하고, 새로운 이벤트였던 꽃 축제도 직접 기획해 무난히 마칠 수 있었고, 은행나무 길 조성, 본관 앞에 소나무도 산지인 강릉에 직접 가서 골라 심었고, 꽃 길과 화훼단지 조성하는 등 주어진 여건 안에서 몇 가지 일을 했다.
특히, 총장이 꽃을 좋아해 외부에서 사서 심기도 했지만 모자랄 땐 종전에 근무했던 곳과 알고 지내던 사람이 책임자로 있던 모 약초시험장 등에서 얻어와 심고, 원추리와 같은 야생화는 학교 부근 논밭두렁에 버려져 있다시피 한 것을 인부를 동원해 캐와 심고, 부용(芙蓉)등은 휴일 날 아내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씨를 받아 심기도 해 많은 경비를 절감했다. 그러나 워낙 캠퍼스가 넓어 다 꽃을 심기는 힘들어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길 가장자리나 조그마한 빈터를 골라 심는 데 그쳤다.
북문으로 가는 길 외진 곳에 저절로 자라는 코스모스가 있어 박 조교와 일하는 아주머니 몇 분과 함께 솎아 심고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다. 9월 중순 원래 자라든 곳의 코스모스는 꽃이 만발해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는데 옮겨 심은 꽃은 잎만 무성할 뿐 꽃망울조차 맺으려 하지 않아 애가 탔다. 시간을 더 두고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도 궁금해 같은 관사에 살고 있으며 다른 팀에서 전기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이 선생과 차를 함께 타고 갈 기회가 있어 코스모스 이야기를 꺼냈더니 ‘선생님, 가로등 때문이 아닐 까요’ 한다. 그 때 몽둥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맞다’ 내가 왜 진작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무더웠던 그 해 여름 일하는 사람들을 고생시켜가며 옮겨 심고, 말라 죽지 않도록 물주는 등 그 후에도 수고를 시켰던 일련의 일들이 모두 내 무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미안 했다.
특히, 전문가라고 자부했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나무와 꽃에 대해 잡지에 글을 쓰거나 자문도 해 주었었는데 이 일로 내 무식이 백일하에 들어나고만 것이다.
식물의 개화(開花)는 기온이나, 토양, 수분에도 영향을 받지만 일조(日照)시간이 가장 큰 영향을 주어 낯 동안 햇볕 쪼이는 시간이 짧아야 꽃이 피는 단일성 코스모스의 개화생리를 모르고 밤에도 불이 켜져 있는 가로등 밑에 심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러한 기초지식을 소위 전문가(?)로 자처하던 내가 몰라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앙도서관에 근무하는 최 팀장으로부터 건물 앞의 빈터가 흙이 드러나 보기 싫으니 총장이 꽃을 심으라 한다며 전화가 왔다. 작은 양이라 사서 심기도 뭐해서 포지에 조금 남아 있던 구절초와 금계국을 심었더니 올 해 피느냐 물었다. 금계국과 달리 구절초는 피는 것 같아 그렇다고 하였으나 이 구절초 역시 늦가을이 되어도 피지 아니하여 거짓말이 되었다.
뒤늦게 얻은 직장에서 비록 늦은 나이였지만 실제로 꽃을 가꾸면서 얻은 경험은 고수, 금잔화, 쑥부쟁이, 좀개미취, 황금, 털부처꽃, 도라지, 부용, 패랭이, 술패랭이, 범부채, 꽈리, 고려엉겅퀴, 황화코스모스는 그 해 씨를 뿌리면 그 해 꽃이 피고, 구절초, 개미취, 참취, 원추리, 금계국, 영아자, 마타리, 붓꽃, 접시꽃, 클로버핑크, 벌개미취, 꽃창포, 섬쑥부쟁이, 꿩의다리, 잔대, 등골나물, 할미꽃 등은 이듬해가 되어야 꽃이 피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라는 것을 새로 알았다.
네 생에 두 번째 직장이었던 모 대학에서의 생활이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었지만 다만 몇 종의 식물에 대한 개화 습성과 내 지식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자 강인한 생명력을 가져 일부러 뿌려주지 아니 하여도 이듬 해 꽃이 피는 코스모스는 1910년경에 들어온 멕시코가 원산지인 일년생 초화류로 우리말 이름은 ‘살사리꽃’이고 꽃말은 ‘소녀의 순정’이라고 한다. 역할이 좀 더 주어지고 담당자들의 협조가 있었다면 보다 더 잘 가꾸었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제2의 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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