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
순자
초본식물인 쪽은 인도가 원산지이기 때문에 영어로는 인디고(Indigo)라고 한다. 마디풀과 1년생으로 한자로는 남(藍)이라고 부르는데 꽃이든 잎이든 겉모습은 볼품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승보다 나은 제자를 일컫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고사성어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맑고 푸른 바다를 일러 ‘쪽빛 하늘’ ‘쪽빛 바다’라로 비유하는 데도 쓰인다.
대개의 다른 식물과 마찬가지로 초록색 잎에 꽃은 붉고, 여뀌와 비슷한 수수이삭모양으로 열매가 열린다. 4~5천년 전에 이집트에서 미라를 감는 마포(麻布)를 염색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기원 전 3세기에 파키스탄-중앙아시아-중국에 전해져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중요한 염색재료이기도 한 쪽은 지방과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청색계통을 물들이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사용해 오던 염색 재료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색을 낸다고 한다.
잎을 따서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어 두었다가 한 번 뒤적인 다음 하루 밤을 재우고 쪽을 건진다. 물 10에 굴 껍데기를 태운 석회가루를 2의 비율로 고르게 섞어 놓는다. 다음 콩대 등을 태운 재로 만든 잿물을 따뜻하게 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쪽 물이 우러난다. 이 용액에 천을 여러 번 담가 본인이 원하는 색상이 나올 때까지 되풀이 하면 된다. 쪽 염색은 알카리에 의해 화원 염색되는 염료이기 때문에 변색이 잘 되지 아니하고 햇볕에도 강하다고 한다.
또한 쪽은 방균, 방충에도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뱀 꾼들이 뱀을 포획하려 산에 갈 때 쪽잎을 짓이겨 바르며, 옛 날 일본무사들이 전장에 나갔다가 부상을 입어 세균이 감염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쪽으로 염색한 속옷을 입혔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는 이러한 쪽의 효능을 이용해 무좀 안 걸리는 양말을 개발해 시중에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은 중국 3대 유학자의 한 사람인 조나라의 순자(荀子, BC300경~230)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학문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쓴 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학문을 그쳐서는 안 된다. (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靑取之於藍)
쪽빛보다 더 푸르고 (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氷水爲之)
물보다도 더 차다 (而寒於水), 이상이 청출어람이라는 말의 출전(出典)이다.
많은 사람들은 순자라고 하면 ‘사람은 본디부터 악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여 만물의 영장이자 지금까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의 고상하고 착한 마음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해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맹자의 성선설에도 불구하고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인간이 본래부터 착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국 제자백가의 많은 사상 가운데 12세기에 본격으로 받아들인 성리학분야에만 깊이 경도되어 다른 학자들의 이론을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인간은 나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순자는 이런 연유로 처음부터 멀어진 분이다.
순자의 원래 이름은 순황(筍況)이었다고 한다. 유학에 매료되어 공자와 맹자사상을 가다듬어 체계화했으며, 이해하기 쉽고 응집력 있는 유학사상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 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보는 그의 염세주의적 관점만을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이룩한 많은 지적인 업적이 흐려졌다고 한다.
그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다른 유학자들과 다른 점은 사상뿐만 아니라 저술활동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즉 유학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논어><맹자> 등, 초기 유학 저술들이 일화나 경구(警句)로 채워진 서술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어 철학적 논의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데 비해 그가 직접 썼다는 <순자>는 유가 철학자 가운데 최초로 스승의 말, 대화를 기록한 제자들의 글 뿐 아니라, 자기가 직접 쓴 체계적인 논문을 통해 사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이 그것이다.
그의 철학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선한 것은 수양에 의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만일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둔다면 이기적이고, 무질서하며, 반사회적, 본능적 충돌들로 가득할 것이다.'라고 극기와 수양을 강조한 것으로 요약된다. 이 주장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맹자의 성선설과 배치된다. 그러나 순자의 성악설 역시 모든 인간은 잠재적으로 성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바탕에서 출발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유림들에 의해 순자의 사상이 올바르게 이해되지 못한 것은 그의 이론 중 성악설만 과장되어 도입되고 끊임없는 수양을 통해 비로소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 배제된데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세상이 복잡해지고 교육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도 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요즘 세태를 볼 때 성악설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주장이라고 본다.
청출어람을 줄여서 ‘출람(出藍), 다른 말로는 청람지재(靑藍之才), 청람지예(靑藍之譽)라고도 한다고 한다.
한 때 나일론 등 화학섬유가 옷감의 주요 소재가 되면서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던 쪽이 주변에 사라질 뻔 했었다. 그러나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이 각 분야에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염색방법인 천연염색의 우수성이 재인식되면서 다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듯이 순자도 그 사상이 새롭게 조명되어 될 그런 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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