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이야기

갈대의 새싹이 붉은 이유

이정웅 2008. 5. 12. 14:47
 

 갈대의 꽃

 갈대의 줄기 붉은 색이도는 것은 박제상이 피 때문이라고 한다.

 

 갈대 새싹

 

물가에 자라는 다년생초본류로 주로 발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갈대는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른 잡초와 마찬가지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골치 아픈 존재이다.

또한 영국의 문호 세익스피어가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고 하여 지조 없는 여자의 대명사로 불려지고 있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천대와 달리 순천만 ‘갈대제’와 같이 관광자원으로 특정지방지치단체에 부를 안겨주고 더 나아가 오염된 하천을 정화시켜주는 식물로 각광받고 있다.

갈대는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제17대 내물왕 35년(390) 왜왕(倭王)이 보낸 사신이 찾아왔다. 그는 ‘저희 임금이 대왕께서 신성하시다는 말씀을 듣고 백제의 죄를 고해 받치도록 하고 대신 한 분의 왕자를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왕은 10살인 셋째 아들 미해(美海)를 시종과 함께 보냈다. 그러나 30년이 지나도록 돌려보내지 아니하였다.

19대 눌지왕이 왕위에 오른 지 9년(425)이 되었다. 하루는 여러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세 순배가 돌고 풍악을 울리며 술자리가 무르익어 갈 무렵 왕이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내물왕)께서 신라의 안정을 위해 셋째 아들 미해를 왜에 보냈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짐이 비록 부귀를 누린다고 하나 하루라도 이를 잊어버리거나 울지 않을 때가 없었다. 만일 아우를 구출하여 함께 선왕의 사당에 고할 수 있다면 나라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겠다. 누가 이 계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라고 하자 여러 신하들이 한결같이 ‘삼라군 태수 제상이 적임자로 보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왕이 제상을 불러 물으니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어렵고 쉬운 일을 논한 뒤에 실행한다면 불충이라 할 것이고 죽고 사는 것을 따져본 뒤에 행동한다면 이는 용기가 없다고 할 것이 옵니다. 신은 비록 똑똑하지 못하나 왕명을 받들어 행하고자 하나이다.’ 라 했다. 왕이 매우 가상히 여겨 술잔을 나누어 마시고 손을 잡은 뒤 작별했다.

제상은 임금께 하직 인사를 한 후 말을 타고 집에도 들리지 않는 채 율포(栗浦, 울산부근의 포구)로 달려갔다. 이 소식을 들은 제상의 아내는 허겁지겁 율포로 향했으나 배는 이미 포구를 출발 일본으로 행하고 있었다. 아내가 애절하게 불렀으나 손만 흔들 뿐이었다.

제상이 왜국에 도착하여 ‘신라왕이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부친과 형을 죽여 도망쳤다.” 고 거짓말을 하니 이 말을 듣고 왜왕이 기뻐하며 거처를 마련해 주고 쉬게 했다. 이 때부터 제상은 미해를 모시고 바닷가에 나아가 놀면서 물고기와 새를 잡아 왜왕에게 받쳤다. 왕은 기뻐하며 제상에 대한 의심도 점점 물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심한 안개로 한 치 앞을 볼 수없을 만큼 날씨가 어두웠다. 제상이 말하기를 ‘떠 날 수 있습니다.’ 미해가 말하기를 ‘그러면 함께 갑시다.’ 라고 했다. 제상이 말하기를 ‘신이 만약 간다면 왜인들이 알아차리고 뒤를 쫓아올까 염려가 되오니 신은 남아서 뒤쫓는 것을 막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미해가 다시 말하기를 ‘지금 나와 그대는 부모형제와 같은 데 어찌 그대를 버리고 나 홀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이요.’라 하니 제상이 말하기를 ‘신은 왕자님의 목숨을 구하여 대왕의 마음만 위로하면 그것으로 만족하오이다. 어찌 살기를 바라겠습니까?’라 하면서 술을 따라 미해에게 드렸다. 이 때 신라사람 강구려가 왜국에 와 있었는데 그 사람으로 하여금 왕자를 따라가게 하고 제상은 미해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주위의 사람들이 들어가 보려하였으나, 제상이 나와서 그들을 말리면서 말하기를 ‘어제 사냥을 하시느라 말을 타고 쏘다니셨기 때문에 몹시 피곤하여 일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해가 기울어질 무렵에 주위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다시 물으니 대답하기를 ‘미해는 이미 오래 전에 신라로 갔다.’ 고 하자 그들은 급히 달려가 왜왕에게 보고했다.

왕은 말 탄 병사들로 하여금 그를 쫓게 하였으나 따라잡지 못했다. 이에 제상을 가두고 심문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너의 나라 왕자를 몰래 보냈느냐?’ 라고 하니 제상이 답하기를 ‘나는 신라의 신하이지 왜국의 신하가 아니다 이제 우리 임금의 뜻을 성취하고자 할 뿐인데 어찌 구태여 그대에게 말할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 왜왕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지금 너는 이미 나의 신하가 되었는데도 신라의 신하라고 한다면 응당 형벌을 가하겠지만 만약 왜국의 신하라고 한다면 반드시 후한 녹봉을 상으로 주겠다.’라 했다. 그러나 제상이 대답하기를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 않겠으며 차라리 신라의 매를 맞을지언정 왜국의 벼슬과 녹봉은 받지 않겠다.’ 라고 했다.

왜왕이 화가 나서 제상의 발바닥 살갗을 벗기고 갈대를 베고는 그 위를 걷게 하였다. 다시 묻기를 ‘너는 어느 나라 신하냐?’라 하니 대답하기를 ‘신라의 신하노라.’라고 했다. 다시 그를 뜨겁게 단 철판위에 서게 하고 ‘어느 나라 신인가?’라 물었다. 제상이 역시 ‘신라의 신하이다’라고 하자 왜왕은 그를 굴복시킬 수 없어 불에 태워 죽였다.”


한편 신라에서는 무사히 귀국한 미해왕자를 위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죄수들을 풀어주었으며, 제상의 아내를 국대부인으로 높이고, 그의 딸을 미해왕자의 부인으로 삼았다. 경주시 외동면에 있는 치술령(765m)의 한 바위는 제상의 처가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 딸과 함께 올라 늘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은 곳으로, 망부석(望夫石)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한다.

지금도 갈대의 새싹이 붉은 것은 왜왕이 제상의 발바닥을 벗겨 갈대 위를 걷게 할 때 흘린 피의 흔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핏빛처럼 붉은 갈대는 보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박제상을 김제상으로 표현하는 등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와 몇 부분이 다른 점이 있지만 전통사회의 미덕인 나라를 위한 애국정신과 지아비를 섬기는 여인의 애절한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