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이야기

대구에스파스의 "도심 속의 자연"

이정웅 2008. 6. 17. 15:59

 

고사리같은 손으로 모를 심는 유치원 어린이

 

 

우리 토종 삽살개의 묘기를관람하는 유치원생들

 

 

신천 에스파스 "도심 속 자연 고스란히 옮겨놨어요"

 
 
 
아이들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생태계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생태공원이 대구에 있다. 도심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새소리가 들린다. 황매화 박주가리 작살나무 누리장나무 꼬리조팝나무 고광나무 등 생소한 식물들도 이름표를 달았다. 백조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황조롱이 꼬마물떼새가 철따라 뛰어노는 곳. 신천과 금호강이 만나는 무태교 동편 둔치 '신천 에스파스(Espaces)'는 '자연 그대로'를 담고 있다.

◆참개구리, 수달도 살 수 있게

지난 12일 낮 12시 신천에스파스에서는 유치원생들의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사람이 먹을 곡식이 아니라 참새들의 가을 먹잇감을 준비중이었다. 물이 무릎까지 찬 논자락에 들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를 꾹꾹 누르며 "깔깔"거리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미끌미끌한 게 부드럽고 재밌어요."(원예은·7·여·YMCA유치원)

"이렇게 작은 풀이 큰 쌀이 된대요. 신기해요."(이선우·7)

YMCA유치원 김상미(23·여) 교사는 "집에서 컴퓨터만 하는 아이들이 직접 논에 들어가 모내기를 하고 자연을 손끝으로 만지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고 교육에도 좋은 것 같다"며 "좋은 추억거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천에스파스에는 큰 습지가 조성돼 있다. 노랑머리연꽃이 핀 사이로 소금쟁이가 큰 걸음을 옮겼다. 빨간 금붕어가 그늘을 찾고, 미꾸라지가 그 뒤를 쫓았다. 고둥도 숨어 있다. 작은 실잠자리가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고, 하얀 나비가 팔랑거렸다. 생태계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신천에스파스 임신영 단장은 "꽃과 나무만 500종이 넘고 곤충, 동물도 200여종에서 400종까지 늘어나고 있다"며 "가장 깨끗한 자연에서만 산다는 참개구리와 수달도 곧 이곳에 서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생태공원 조성'

신천에스파스는 1995년 르노자동차 회사가 외곽으로 옮기면서 슬럼화된 프랑스 파리 센강 주변을 환경단체들이 나서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것을 벤치마킹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알코올·마약중독자, 출소자와 노숙자들에게 공원 조성 일을 맡겼다.

신천에스파스 조성사업은 2006년 10월 첫 제안이 된 후, 2007년 2월 대구시와 대구YMCA, 대구도시공사가 함께 정부에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을 신청하면서 가시화됐다. 대구YMCA 김경민 관장은 "각종 쓰레기 폐기물로 뒤덮여 있던 이곳에 일자리가 꼭 필요한 사람을 투입해 자연을 살려냈다"고 말했다. 신천에스파스는 도심속 생태 공원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토목사업과는 달리 인건비 외에 든 돈이 거의 없다. 논, 밭, 연못과 습지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파냈고, 그 속에서 나온 돌로 돌담과 돌길을 만들었다. 폐기된 가로수를 가져와 정자와 쉼터를 만들었다. 노숙자,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일없는 노인, 장애인들에게 일을 맡김으로써 이들에게 일할 기회도 주고 있다. 인건비는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정부에서 월 80만원씩을 지난해 50명에게 지급했다. 농기구 등 필요물품은 대구도시공사가 지난해 5천만원을 지원했고 올해 8천만원을 또 지원한다. '공익적 측면은 강하지만 돈벌이는 되지 않는' 사업에 일터를 만든 것이다.

◆그냥 공원과 어떻게 다른가

신천둔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인공적인 꽃밭과 가로수, 잔디를 '그린카펫'이라 부른다. 보기 좋으라고 만들었기 때문에 생태계 조성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신천에스파스는 다르다. 고구마 감자 가지 고추 옥수수가 곳곳에 심겨 있다. 깻잎과 고추도 크고 있다. 지난해 유채꽃 씨앗을 따먹기 위해 좀처럼 보기 힘든 '방울새'들이 날아왔다. 오리농법으로 만든 벼를 찾아 새떼가 찾아왔다. 이곳을 산책하던 이무성(44)씨는 "사람이 없는 새벽녘에는 고라니가 나타나기도 한다"며 "매일 1시간가량은 정자에 앉아 자연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나이테가 선명하게 보이는 손바닥만한 이름표에는 각종 식물의 이름을 적어놨다. 식물을 보고 만지면서 배울 수 있다. 올챙이솔 매자기 속새 등 수생식물도 바구니에 담겨 습지와 연못으로 옮겨가길 기다리고 있다. 한 주민은 "쓰지 않는 나무장승 4개가 있는데 옮겨놓으면 보기 좋을 것"이라며 가져다 놓기도 했다. 자연을 보다 아름답게 꾸며 주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신천에스파스 이정웅 기술위원장은 "자연 속에 함께 참여하는 공간이며 스스로 가꾸는 자연이라는데 의미가 있다"며 "신천둔치 곳곳에 이 같은 공원을 조성한다면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교육적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천에스파스는 이달 중 생태공간 조성을 거의 끝내고 활용 프로그램을 준비중이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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