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람들에게 있어 대덕산은 2개로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은 앞산을 일러 대덕산이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앞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남구청이 구민축제를 ‘대덕제’라고 해서 더욱 그렇게 굳어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적(公的)으로 사용되는 지명은 ‘앞산’이고 <대동여지도>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문서에는 ‘성불산(成佛山)’이라고 했다. 따라서 공부상의 이름으로 부른다면 대덕산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고 앞산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 점 더 이상 혼란이 없었으면 한다.
내곶(內串)을 내환(內患)으로 잘못 적는 사람이 많아 이름을
대흥동으로 바꾼 곳에서 바라본 대덕산
대구 유일의 대덕산(大德山)은 대구스타디움을 안고 있는 대덕산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많은 산 이름이 불교와 무관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고, 심천사(深泉寺)라는 큰 절이 있었다는 <경산읍지>의 기록을 볼 때 이 산 역시 큰 스님의 별칭(別稱)에 해당하는 대덕(大德)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2002년에는 ‘월드 컵 대회’가 2003년에는 세계 젊은이들의 축제인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이미 열렸고 2011년에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릴 예정이니 국제화를 지향하고 있는 대구의 어느 곳보다 국제적인 감각이 곁들여진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구미술관을 건설하고 있어 문화도시 대구의 위상을 높이고, 장래에는 대구대공원으로 개발될 예정이어서 미래에 시민의 사랑을 더 받을 산이다.
건설 당시 규모가 너무 크다 하여 비난을 받았던 국내
최대수용인원을 자랑하는 대구스타디움
특히,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세계에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경기장을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문희갑 시장을 보좌해 이 곳을 포함해 시가지 조경을 진두지휘했던 나로서는 이 산과 경기장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때 문 시장은 추진사항 점검회의를 매월 이 곳에서 개최했다. 유관기관장은 물론 시청의 간부들의 거의 다 참석했기 때문에 매달 한 차례 시청을 이리로 옮긴 것과 다름없다. 좌석 수 역시 서울의 상암경기장을 능가하여 재정을 감안하지 않는 무리한 투자라 하여 말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분이 아니었으면 유니버시아드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유치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그 분의 미래를 보는 높은 안목에 머리가 수그러들지 않을 수 없다.
산림공무원은 도시 조경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산소탱크라고도 하고 허파라고도 하는 산림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산불이 났을 때 신속하게 진화인력을 투입하기 위하여 진입하기 편리한 곳을 찾기 위해 몇 번 올랐다. 특히 전설에 의하면 ‘정상에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밑에는 굴이 있을 뿐 아니라,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으며 또한 12층계의 헛무덤이 있다.’고 해서 올라가서 직접 확인해 보기도 했다.
서상돈님의 묘소, 3만석을 했던 거부답지 않게 지나치리만큼
검소하다
그러나 큰 바위가 있고, 그리 깊지는 않지만 굴이 있는 것은 확인했지만 샘과 12층 개의 헛무덤은 발견하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멸실되었거나 누군가 신비감을 불어넣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전망이 좋아 대구시가지와 고산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덕산이 우리 시민에게 제공하는 또 다른 의미는 나라 사랑 정신이다.
우리 대구는 북쪽에는 팔공산이 북풍을 막아 주고 앞에는 비슬산이 바쳐주며 금호강이 시역의 동에서 서로, 신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며 고만고만한 산과 내가 실핏줄처럼 얽혀 산자수명하며, 이른 바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다는 길지(吉地)이고,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뿐만 아니라, 새마을운동의 주역을 배출하여 민족을 중흥시킨 인재의 보고이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국난극복에 앞장섰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07년에 서상돈 등이 일으킨 국채보상운동이고 1960년 청년 학생들이 불의에 항거한 2, 28학생의거이다. 이 운동은 비록 지역에서 일어난 운동이지만 전 국민을 동참시킨 국난운동이자 구국운동이었다. 나라 사랑과 정의감에 불타는 대구 사람들의 심성을 아주 잘 표현한 사건들이다.
가을 대덕산에서 익어가는 산초나무 열매
특히,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徐相燉,1850~1913)님의 마지막 유택(幽宅)이 있는 곳이 대덕산이다. 당대 3만석을 하는 거부였지만 그 많은 재산을 국권회복운동과 학교설립, 천주교회활동에 쓰고 당신은 열 평도 안 되는 작은 공간 범물동 천주교묘역에 잠들고 계신다.
산행을 통해 건강을 다지고 우정을 돈독히 해, 삶의 활력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땅이 자랑스럽고 이 땅을 우리게 주어 오늘 이렇게 뜻 깊은 만남에 동참하도록 해 주신 선조들에게도 감사하고 대구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최근 보도(라이프 매일, 08년 9월 18일자)를 보니 동구 안심에 있는 초례산(醮禮山)을 두고, 초레봉으로 낮춰 부르거나, 고려 태조 왕건이 28번째 부인을 맞아 초례를 치러 초례산이라고 한다는 등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이런 보도를 보고 많은 시민들이 그 기사를 사실로 생각할까봐 겁이 난다. 산 이름이 태조에 의해 유래된 것은 사실이지만 혼인을 의미하는 초례(醮禮)가 아니라, 동수 즉 지금의 지묘동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을 치기 위해 군사를 모아 천지신명께 승리를 기원하는 제(祭)를 올린 곳이라는 뜻이다.
<하양현읍지> 산천조에 ‘高麗太祖征甄萱于桐藪登 此山祭天故仍爲名’이라ㄴ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 이외에도 잘 못 불려지는 산 이름이 몇 개 더 있어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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