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컬럼

여유롭게 나이 먹는 지혜

이정웅 2009. 2. 2. 20:54

 여유롭게 나이 먹는 지혜
평생 짓누르던 집착 굴레 벗고 이젠 순리속에 ‘나’를 맡기자

 
 
나스레딘 호자라는 57세 난 철학자는 늘 동네 청년들이 모여 노는 곳에 끼어들길 좋아했다. 어느 날 부담을 느낀 청년들이 넌지시 나이가 많으시니 안 끼어들었으면 좋겠다는 눈치를 주려고 뻔히 알고 있는 나이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 올해 연세가 몇이십니까?’ 낌새를 알아차린 철학자가 능청스런 얼굴로 대답했다. ‘마흔일곱이지.’ ‘아니 선생님, 10년 전에도 마흔일곱이라 하셨는데 어째 아직도 마흔일곱이십니까?’ 기가 죽을 줄 알았던 호자가 큰 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할 수 없잖은가?’

터키 철학자의 풍자가 아니라도 중년이 지나면 너나없이 나이 한 살 더 먹는 걸 왠지 달갑잖아들 한다. 연륜이 쌓이고 나이 관록이 더해지는 걸 생각하면 설날에 한 살이라도 더 먹는 게 그다지 나쁠 거 없을 것 같은데도 속마음은 더 젊어지고 싶은 쪽으로 기우는 모양이다.

여성들이 39세가 지나면 그해부터 나이 계산을 멈춰버린다는 말도 있지만 남자들도 50, 60대 중노년이 넘으면 나이를 되돌리고 싶어하는 기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 설날 오고 간 인사 덕담 가운데 세뱃돈을 준 세대들이 들은 덕담도 오래 사시란 인사와 ‘건강’ 덕담이 가장 빈도가 높았을 것이다.

누리고 즐길 게 많아지고 살기 편한 세상이 돼 갈수록 건강과 長壽(장수)에 대한 집착과 젊어지고 싶은 욕망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딜 가나 모령(80`90세)과 期(기=100세)를 누리겠다고 산을 오르고 헬스 클럽을 찾고 건강식을 고르느라 기를 쓰는 모습들을 본다. 그러나 정작 그런 집착과 억척스러움의 뒷면을 들여다보면 건강을 팔아 생활(현실적 욕망)을 사는 거꾸로 된 삶을 살아야 하거나 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過勞死(과로사)하는 공직자가 300명이 넘는다는 안타까운 뉴스도 그런 우리의 삶의 방식과 구조`가치관이 어딘가 고장 나 있음을 시사한다. 조직에 대한 충성, 봉사, 승진 같은 현실적 가치를 위해 건강이란 더 큰 가치를 거꾸로 맞바꿔 희생한 셈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 산 최고령 공직자라는 18세기 베네치아의 홍고(hongo)라는 외교관의 삶은 그런 우리에게 교훈을 던져준다. 그는 115세 때 領事(영사)에 임명되고 117세 때 사망할 동안 5번이나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일평생 단 하루도 앓아 누운 적이 없었으며 마지막 죽던 날 아침에도 매일 걷던 12.8㎞의 산책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49명의 자녀를 남긴 그가 죽기 1년 전에 밝힌 장수비결은 ‘용모 단정한 젊은 숙녀들과 즐거운 모임을 갖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으며 그것이 자신을 늘 젊게 해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공직자 세계뿐만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 심신이 밝고 건강한 상대를 즐겁게 만나는 평화로운 여유보다는 사방을 치열한 전쟁터처럼 만들어 놓고 팽팽한 긴장과 마찰 속에 삶을 살아간다. 폭력`시위`방화와 연쇄살인`유해식품`실직과 궁핍, 짓눌린 경쟁, 사면에 그런 어둡고 거친 敵對(적대)적 상황과 대상들에 둘러싸인 채 맞부딪치며 사는 삶 속에는 평화와 여유라는 여백이 없다.

이제 또 한 살 더 먹으면서 지치도록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평화와 여유를 찾는 삶이 더 아름답다는 소박한 순리를 깨치며 살자.

누구나 닥칠 중`노년에 그런 순리와 여유롭게 나이 먹는 지혜를 일깨우는 좋은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쓸데없는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큰 것만 보라는 것이요, 이가 시린 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식만 먹게 해 노년의 소화불량을 도우려함이고,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좋은 말만 듣고 험담은 듣지 말라는 뜻이며, 걸음걸이가 어둔하고 부자연스러워짐은 매사에 조심해 움직이고 함부로 멀리 나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정신이 깜빡거리는 것은 살아온 지난 세월 나쁜 일까지 다 기억하지 말고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조금 기억하라는 배려이고, 머리가 희게 새는 것은 멀리서도 젊은 사람들이 어른임을 알아서 대우해 주도록 한 조물주의 배려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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