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유년의 추억이 깃든 소태나무

이정웅 2009. 5. 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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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이 좁은 대구지만 식물의 종 다양성면에서는 결코 다른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임업시험장 책임자로 있을 때 한편으로는 수목원조성에 매진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대구지역에 자라는 식물이 몇 종이 있느냐 하는 것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구를 조사하여 시정(市政)에 활용하듯이 몇 종의 식물이 있으며 어떤 식물이 어느 지역에 있느냐를 알아야 자연보호정책을 수립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에는 대구광역시 행정구역 전체를 대상으로 식물분포사항을 조사한 자료가 없었다. 대구지역 자연생태계의 주요 구성요소인 식물을 보호· 관리해야하는 부서의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시의원(市議員)들의 입장에서 보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통계로 생각하여 조사에 따른 경비지원에 소극적이었다. 즉 도시개발이나 사회복지증진 등은 재정수요가 많고 시의원들의 관심이 큰데 비해 나무와 풀을 조사하는 것이 시정에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고 하는 생각이 많다. 다시 말해서 도로건설이나 주택건설 등 개발행정만이 시정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들을 설득해서 예산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환경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등장한 요즘은 다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이러한 행정환경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손을 놓을 형편도 아니었다. 곧 완성될 수목원은 많은 종의 나무나 풀을 심어 다양한 종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 내에 있는 우수한 유전자원을 찾아내 보존·증식해야하는 일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궁하면 트인다는 속담처럼 고민 끝에 묘안이 떠올랐다. 기존 발표된 자료들을 수합(收合) 정리한다면 일일이 현장을 돌아다니며 조사한 것보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시에서 발간한 자료와 지역대학의 교수,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발표한 논문을 모아 짜깁기를 하면 큰 돈 안들이고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무 담당자를 지정해 자료 정리를 끝내고 1997년 마침내 <대구의 식물상>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물속이나 물가에 사는 수생식물부분이 소홀했지만 시역 내 산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되어 언론에서도 칭찬을 들었다.

이 자료집을 통해 대구지역에는 초본류가 940종, 목본류가 415종 모두 1,355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4,000~4500여 종의 식물 중에서 25%정도에 불과한 것을 두고 무슨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식물은 온도에 민감하여 난대(暖帶)지방 식물이 온대(溫帶) 남부지역인 대구에서 자라기 어렵고 한대(寒帶)지방 식물 역시 대구에서 자랄 수 없는데다 대구시 행정구역이 국토의 1%정도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유산 중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천연기념물 중에서 제1호인  측백나무 숲이 대구에 있는 점은 매우 자랑스럽다. 이외에도 고(故) 양인석박사가 용지봉 부근에서 발견하여 명명한 ‘세뿔투구꽃’, 일제강점기 전국을 샅샅이 뒤진 일본의 조선식물학자 나까이가 향산에서 찾아내 역시 이름을 지은 ‘큰구와꼬리풀’ 최근 이영노박사가 앞산 어디에서 발견해 명명한 대구으아리 등과 꽃이 아름다운 이팝나무의 자생지가 대구라는 점, 멸종위기 2급 식물인 ‘노랑무늬붓꽃’이 팔공산에서, ‘솔나리’가 비슬산에서, 비록 멸종위기 식물은 아니지만 물여뀌, 자라풀이 금호강에 자라는 점 등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소개하고자 하는 소태나무도 대구의 자랑거리 나무 중에서 하나라고 생각된다. 앞서 천연기념물 제1호 이야기를 했지만 대구에는 이 이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할 대상으로 이 ‘소태나무’를 비롯해 옥포면 교항리의 ‘이팝나무군락’ 앞산 정상부위의 ‘가침박달군락’ 가창 오동의 ‘참죽나무’ 등을 꼽을 수 있다.

평소 어느 도시에 있어서 문화재가 많다는 것은 그 도시의 품격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필자는 대구의 귀중한 나무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려고 시도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천연기념물 지정과 관리는 산림을 관장하는 녹지부서와 달리 문화재 관련 부서가 맡고, 사무를 관장하는 공무원의 직위 또한 학예직으로 나무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해 소홀히 취급될 뿐만 아니라, 그나마 협조나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에는 다른 부서에서 하는 일을 두고 타 부서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행정조직 내부적으로는 금기(禁忌)사항이기 때문에 가슴앓이만 하고 실패했다.

유가면 가태리의 소태나무는 관목인 여느 소태나무와달리 수령이 500년으로 국내에서 천연기념물로 유일한 안동 길안면 송사리의 소태나무(천연기념물 제174호)에 비해 키는 작으나 나이는 더 많고 아직도 당산목으로 주민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밥상에 차려진 반찬이 쓸 경우를 두고 지금도 ‘소태’같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말은 소태나무의 수액이 쓴데서 유래되었다. 50대 이상 대다수 장년들은 소태나무의 쓴 맛을 보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 엄마 품에 안겨 칭얼대는 아이의 젖을 빨리 떼고 산후 조리도 충분히 하지 못하고 농사일을 해야 하는 그 때 어머니들이 소태나무의 가지를 꺾어 가슴에 발라 그 쓴 맛 때문에 더 이상 젖을 먹으려하지 않도록 했었다.

소태나무가 자라고 있는 남통마을 주변에는 대구에서 가장 큰 저수지 달창지가 있다. 호수처럼 넓게 펼쳐져 있어 경관 또한 아름답다. 아랫마을 구례에는 임란 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홍의장군 곽제우 (郭再祐, 1552~1617)선생과 정유재란 시 선봉장 가등청정의 1만여 왜군이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진출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황석산성을 지키다가 전사하자 두 아들 곽이상, 이후와 딸, 며느리까지 일가족이 순절하여 충신, 효자, 열녀를 한 집에서 배출하여 후세 ‘일문삼강(一門三綱)’으로 추앙 받는 곽준(郭䞭, 1551~1598)을 기리는 예연서원(禮淵書院)이 있다. 아울러 마을 입구에 곽준나무(은행), 곽재우나무(느티) 및 두 분의 신도비가 나란히 서 있는데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땀을 흘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