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과 공자

이정웅 2010. 3. 28. 07:55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세계 4대성인의 한 사람이자

조선의 정치사상을 지배했고

지금도 각 고을 향교 대성전에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받는

우리나라는 물론 인류 참 스승의 표상인

성인 공자의 후손인 

그가 교육계의  수장으로 있으며

저지른 비리로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맑고 깨끗한 교육풍토 조성이

그렇게 이루기 어려운 일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한다. 

 

곡부공씨의 역사

공씨(孔氏)의 시조인 문선공(文宣公) 공자(孔子: 본명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는 중국 노(魯)나라 추읍(鄒邑: 曲阜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언행(言行)을 적은 《논어(論語)》가 전한다.공자의 53세손인 공완(孔浣)의 아들 중 장자 공사회(孔思晦)는 중국에서 세거하였고, 차자인 공소(孔紹)가 원(元)나라 순제(順帝)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는데, 1351년(공민왕 즉위)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배종(陪從)하여 고려에 들어와 귀법하였다. 이후 문하시랑평장사(文下侍郞平章事: 내사문하성의 정이품)로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지고 관향을 창원(昌原)으로 사적(賜籍) 받음으로써 우리나라 공씨(孔氏)의 시조가 되었다. 초명은 소(昭)였는데, 고려 광종의 이름과 같아 피휘(避諱)하여 소(紹)로 고쳤다고 한다.그리하여 후손들은 처음에 사적 받은 창원(昌原)을 본관으로 삼았으나, 1794년(정조 18) 공자의 고향인 곡부로 개관(改貫)하게 되었다.공씨의 본관은 곡부를 비롯하여 파평(坡平)·수원(水原)·부평(富平)·남양(南陽) 등 45본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지나 현존하는 관향은 곡부공씨(曲阜孔氏) 단본(單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