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고문은 실적 강요 탓"이라고 청장 치받은 강북서장

이정웅 2010. 6. 29. 21:17

"고문은 실적 강요 탓"이라고 청장 치받은 강북서장

 
채수창 서울강북경찰서장이 "양천서 고문(拷問) 사건은 범인 검거 실적으로 보직 인사, 승진 인사를 해서 (일선 경찰이) 실적 경쟁에 매달리도록 한 서울경찰청 지휘부 책임도 크다"면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에게 자신과의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 채 서장은 "실적이 안 나오면 (서울경찰청) 감사관들이 떼로 몰려다니면서 사생활까지 뒤졌다. 실적 나쁘다고 지적받은 뒤 순찰차를 전부 세워두고 도둑 잡았는지 보고하라고 독촉했던 나도 부끄럽다"고 했다.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이에 대해 "성과주의를 완화시키려 노력했는데 승진하려는 중간관리자들이 직원들을 압박한 경우가 있다. (고문은) 양천서 1개 팀의 문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강북서는 서울경찰청 평가에서 4개월 연속 최하위에 머물러 최근 감사를 받았다. 채 서장은 그에 대한 반발로 실상을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하지만 양천서 고문을 실적주의(實績主義)와 연관 지을 만한 간접증언들은 있다. 양천서는 "마약사범이나 강력범죄자 체포 과정에서 반항할 때 물리력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검찰이 확보한 CCTV엔 작년 12월 거리에서 주운 다른 사람 카드를 32회에 걸쳐 사용한 혐의로 붙잡힌 김모씨가 고문당하는 장면이 들어 있다. 마약사범도 살인강도도 아닌 사람을 입에 휴지를 넣은 뒤 테이프로 재갈을 물리고는 수갑을 뒤로 채워 팔을 위로 꺾어올리는 날개 꺾기를 한 것이다. 마약·특수절도 혐의로 수감 상태에서 지난 3월 인권위에 진정을 냈던 임모씨는 "경찰이 나더러 여죄 50가지가 있는데 27건을 네가 안고 검찰로 넘어가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양천서 강력5팀은 강력계 6개 팀 가운데 작년 9월~올 3월의 내부 평가에서 1위 3차례, 2위 2차례로 가장 좋은 실적을 냈다. 고문이 실적주의 평가와 관련됐을 수도 있는 개연성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경찰 수사는 국민의 인권(人權)을 지키는 데 기본 목적이 있다. 고문은 고문당하는 사람의 인간성을 문드러지게 만들어버리는, 인권 침해 가운데서도 가장 나쁜 인권 침해다. 이번 일의 진상(眞相)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러려면 경찰 내 감사 조직보다는 감사원 같은 경찰 밖 정부조직에서 나서서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