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때 총알을 그렇게 많이 맞았는데도 이렇게 늠름하게 자랐어" 30년전에 큰 산사태가 났어…그때 흙더미에 나무가 묻혀 죽는 줄 알았는데…
상주나들목을 앞두고 진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밤나무꽃 냄새다.
이번 노거수 이야기의 주인공은 밤나무다. 상주는 곶감, 누에, 쌀로 대변되는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또한 친환경 운송수단인 자전거가 많기로도 전국에서 이름이 높다. 밤나무가 있는 상주시 화북면 입석2리 덕암마을은 충북과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대구에서는 자동차로 2시간가량 걸린다. 입석2리에는 덕암, 선돌, 신기, 장담마을이 있다. '입석리'라는 이름은 마을회관 앞에 서 있는 커다란 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덕암마을은 과거 담배농사를 많이 지어 밤나무 앞에 커다란 담배 건조실이 두군데나 있었지만, 현재는 논농사와 하우스 수박, 토마토 등의 농사를 짓고 있다.
덕암마을 입구에 있는 밤나무는 보통 밤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웅장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늠름해 마치 마을을 보호하고 주민들을 지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크기로 보면 느티나무나 왕버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현재 이 밤나무는 유백색의 꽃으로 뒤덮여 있다. 밤나무꽃 특유의 비릿한 향기가 진하게 전해온다. 밤나무 아래 평상에서 쉬고 있던 장봉규 할아버지(72)는 나무의 내력에 대해 자세히 들려줬다.
장 할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집안의 할아버지뻘인 장돈식씨가 지게 작대기만한 묘목을 가져와 심은 게 이처럼 큰 나무가 됐다"고 했다.
밤나무는 자라면서 많은 수난을 겪었다. 6·25전쟁 때는 총탄 세례를 맞기도 했고, 1980년에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나무가 1m 이상 흙으로 덮이기도 했다. 또한 밤나무 옆 작은 개울을 복개할 때 남쪽으로 뻗어 있는 뿌리를 훼손해 한동안 잎이 시원찮았던 적도 있다. 이런 시련이 애처로웠던 주민들은 일 년에 한 번 막걸리 한 말을 나무 주변에 뿌려주며 잘 자라도록 보살펴주기도 했다. 여러 어려움을 이겨낸 밤나무는 이제 매년 많은 밤을 생산해 주민들을 즐겁게 한다.
19세 때 덕암마을로 시집왔다는 신선호 할머니(87)는 "시집왔을 때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우리 마을 밤나무처럼 크고 오래된 나무는 없다"며 자랑이 대단하다.
주민들의 보호 속에 자라는 있는 밤나무의 생육환경은 좋은 편이다. 다만 남쪽으로 뻗어 있는 몇몇 가지의 생육상태가 불량하다. 주민들은 뿌리를 훼손한 탓이라고 여기고 있다. 줄기는 0.5m 높이에서 동서로 갈라지고 다시 다섯 가지로 뻗어있다. 동서로 나눠지기 전 밤나무의 둘레는 3.74m이다. 나무의 높이는 10m는 족히 넘어 보인다. 밑동 주변에는 은행나무 잎이 둘러져 있다. 이는 개미들이 밤나무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입석리 밤나무는 조선 토종 밤나무라고 한다. 가을에 밤이 바닥에 떨어지면 주민들이 주워 먹는다. 개량밤에 비해 육질이 단단하고 떫은 맛이 없으며, 달고 고소하다고 한다.
밤나무는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라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넓은 그늘을 제공한다. 나무 아래 평상에 앉으니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금세 말려 준다. 시원한 바람에 실려온 밤꽃 향기에 취해 고개를 들어보니 밤꽃이 하늘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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