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역사에 당당히 맞선 참군인' 장태완 前 국회의원 별세 진실 알리기에 적극 나서기도 | ||||||||||
칠곡군 석적이 고향인 고인은 6·25전쟁 중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했으며 베트남전 참전 이후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랐으나, 1979년 12·12사태 때 신군부 측에 반기를 들다 강제 예편됐다. 또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12·12사태가 재조명되면서 '참군인'으로 추앙을 받았으며 자유 경선에 따른 첫 재향군인회장을 거쳐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고 장 전 국회의원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군인 중 한 명이다. 경북 칠곡에서 3남 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나 대구상고를 다니던 중 6·25가 터지자 19세의 나이로 육군종합학교(11기)에 지원, 사선을 넘었다. 또 육군대학 졸업논문으로 보안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가 베트남 참전 때 ‘사상 불순자’로 찍히기도 했다. 1971년 1월 별을 단 그는 수경사 참모장과 26사단장 등을 거쳐 10·26 직후 수경사령관이 됐다. 이후 참군인으로 살아온 고인에게 불행이 시작됐다. 수경사령관 취임 불과 1개월 만에 신군부에 의해 12·12사태가 터졌고 고인은 이를 '반란'으로 규정, '이기지 못할 싸움'임을 알면서도 군인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진압에 나섰다. 생전 고인은 당시 상황에 대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하나회원들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납치했을 때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며 "그러나 진압 책임을 맡은 내가 백기를 들 수는 없었고, 죽기로 결심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회고했다. 결국 신군부 진압에 실패한 장 전 의원은 보안사령부에 체포돼 서빙고 분실에서 두 달간의 조사를 받고 풀려났으나 30년 동안 입었던 군복을 벗어야 했고 이후 2년간 가택연금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TV뉴스를 통해 보안사에 끌려가는 아들의 모습을 본 시골의 아버지는 곡기를 완전히 끊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1980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1982년 2월에는 서울대에 재학중이던 외아들이 행방불명됐으며 얼마 뒤 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서 꽁꽁 얼어붙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후 숨죽인 채 통한의 삶을 살아오던 고인은 1993년 민주당 '12·12쿠데타 진상조사위'를 통해 공개증언에 나서며 '진실 알리기'에 나섰다. 군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2·12사태에 대한 역사적 판단 이전에 사법적 처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것. 1994년 자유경선으로 재향군인회장으로 취임한 뒤 2000년 3월 민주당에 입당, 16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는 정계 은퇴 후에는 쿠데타를 막지 못한 ‘한’을 풀고자 동서고금의 쿠데타 자료와 쿠데타를 막는 국가 시스템 연구에 매진하기도 했다.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고인이 생을 마감하기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12·12사태가 발생한 지 26년이 지났다. 고인이 목숨을 던지며 막고자 했던 반란군의 주역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고 대부분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반란군에 맞서 얼마 되지 않은 군인을 이끌었던 이 시대의 참군인인 장태완 전 장군도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인은 지난 2008년 폐암 수술을 받은 뒤 건강 상태가 나빠져 투병 생활을 해 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병호 씨와 딸 현리 씨, 사위 박용찬(인터젠 대표)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02)3010-2000.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장태완의 삶 ▷1931년 경북 칠곡 출생 ▷50년 대구상고 재학 중 6·25참전. 육군종합학교 11기 졸업. 육군 소위 임관 ▷53년 조선대학교 법학과 졸업 ▷54년 보병학교 전술학교관 ▷71년 장군진급 ▷75년 26사단장 ▷79년 11월 수경사령관 ▷80년 육군소장 강제 예편 ▷82년 한국증권전산 사장 ▷94년∼2000년 제27대, 28대 재향군인회 회장 ▷2000∼2004년 전국구 국회의원 ▷상훈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자랑스런 한국인상(96년) ▷저서 12·12쿠데타와 나(1993년, 명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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