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대구를 빛낸 인물들의 사연 간직한 나무 24그루

이정웅 2010. 11. 14. 07:43

울긋불긋 역사에 물든 보호수엔 스토리 '주렁주렁'
대구를 빛낸 인물들의 사연 간직한 나무 24그루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에게 계산성당은 특별한 존재였다. 계성학교를 오가는 길에 늘 마주치던 계산성당은 소년이 그림에 담고 싶은 대상이었다. 1929년 17살의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일찌감치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이인성은 계산성당을 화폭에 담아 ‘계산동 성당’과 ‘성탑’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이인성이 1930년대 전반에 그린 ‘계산동 성당’(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은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풍이 지배하던 시기에 ‘조선의 향토색’이라는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계산동 성당’에서 고딕양식의 성당과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 또 하나의 대상은 감나무다. 계산성당을 100년 넘게 지키고 있는 이 나무에는 이인성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비록 그는 가고 없지만 그의 이야기는 그림과 함께 남아 후세에 전해지면서 이 감나무는 ‘이인성나무’로 불리고 있다.

대구에는 스토리를 간직한 나무가 많이 있다. 대구시는 지난 2002년부터 역사 속 인물과 관련 있는 나무를 발굴해 이들의 이름을 붙여 보호하고 있다. 이렇게 지정된 나무는 총 24그루에 이른다.

겨울이 오기 전 대구를 빛낸 인물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도 의미 있는 가을 나들이가 될 것 같다. 특히 이들 나무들이 유서 깊은 곳에 위치해 있어 향토 역사를 배우는 학습의 기회로도 손색이 없다.

◆도심권

이인성나무가 있는 계산성당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다. 계산성당 한쪽에 고고한 자태로 서 있는 이인성나무는 수령이 100년이 되었지만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가지가 휠 정도로 감이 주렁주렁 달렸다. 빨갛게 익어가는 탐스러운 감이 고즈넉한 성당 풍경과 어우러져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계산성당 맞은 편 대구제일교회에는 ‘현제명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3·1운동의 함성이 서려 있는 대구 3·1운동 길을 따라 대구제일교회에 들어서면 아름드리 이팝나무가 눈에 띈다. 바로 현제명나무다. 현제명나무가 있는 곳은 계성학교를 다닌 현제명(1902~1960)이 학창 시절 음악적 감성을 키운 청라언덕(옛날 선교사들이 살았던 대구 중구 동산동 동산병원 인근의 언덕) 자리다. 오색 단풍이 물드는 인근 나무들과 달리 연초록 잎으로 지는 이팝나무는 음악으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푸른 현제명을 연상시킨다.

오랫동안 대구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아 온 달성공원에는 조선 초기 문신 서침의 이름을 딴 나무가 있다. ‘서침나무’는 달성공원의 상징처럼 공원 중간에 당당한 자태로 서 있다. 수령 300년으로 달성공원에서 가장 오래된 회화나무가 서침나무로 불리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서침은 당시 군사적 요충지였던 달성(지금의 달성공원)을 국가에 헌납했다. 조정에서는 공을 기려 상을 내리려 했으나 서침은 상 대신 주민들에게 거둬 들이는 환곡의 이자를 경감해 주도록 조정에 청원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리는 서침의 숭고한 마음을 기리기 위해 달성의 상징인 회화나무를 서침나무라 명명하게 됐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를 기리는 나무는 종로초등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인간 존중과 평등 사상을 전파한 선구적 사상가인 최제우를 추모하기 위해 40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킨 회화나무에 ‘최제우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원래 종로초교 자리에는 최제우가 처형되기 전 감금된 경상감영 감옥이 있었다.

◆팔공산권

성전암은 1993년 열반에 든 성철 스님이 10년 동안 칩거하며 수행한 곳이다. 이곳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 않고 가부좌 자세로 참선을 함)했던 성철 스님을 옆에서 지킨 ‘승철스님나무’(전나무)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나무를 보면 마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성철 스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같다.

성전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파계사에는 ‘영조임금나무’가 있다. 파계사는 조선 제21대 임금인 영조의 탄생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중요민속자료 제220호인 영조의 도포도 보관돼 있다. 파계사사거리에는 영조 탄생 설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현응 대사를 기리는 나무도 자리 잡고 있다.

동구 지묘동 신숭겸 장군 유적지에는 927년 견훤과 치른 공산전투에 참가했던 태조 왕건과 신숭겸 장군의 이름을 딴 팽나무, 배롱나무가 있다. 이 밖에 동화사에는 ‘심지대사나무’와 ‘인악대사나무’가 있으며 동내동에는 의병장 ‘황경림나무’, 둔산동에는 ‘최동집나무’, 평광동에는 효자 ‘강순항나무’가 있다.

◆수성구권

‘손처눌나무’ ‘이황나무’ ‘정경세나무’가 있다. 손처눌나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장으로 공을 많이 세운 손처눌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황금동 청호서원을 지키는 음나무다. 이황나무와 정경세나무는 성동 고산서당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고산서당은 이황과 조선 중기 학자인 정경세가 강학을 한 곳. 너른 그늘을 제공하는 느티나무에서 후학들에게 큰 학문을 베푼 이황과 정경세 선생의 기상이 느껴진다.

◆달성군권

도동서원은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유학사의 정통을 계승한 김굉필 선생을 배향한 곳이다. 이곳을 지키는 수령 400년 된 은행나무가 ‘김굉필나무’다. 수백 년 세월이 흘렀지만 무성한 잎을 키우고 가을이면 서원 전체를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는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하고 후세에 많은 영향력을 남긴 김굉필 선생을 닮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맹활약한 곽재우와 곽준을 기리는 나무는 이들의 위패가 봉안된 예안서원에 있다. 또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우배선을 기리는 나무는 달서구 상인동 장지산 기슭,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 장수 김충선을 기리는 나무는 녹동서원,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 선생의 18세 손으로 오늘날 도시계획 개념을 도입해 세거지를 세운 문경호의 이름을 딴 나무는 남평문씨 세거지, 신라시대 고승인 도성 대사를 기리는 나무는 비슬산 자락인 도성암에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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