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원경
호남 장성의 편백나무와 영남의 황토로 지어 호골영토산방으로 이름지어졌다.
꽃이 만개한 매화밭
멀리 청도소싸움장과 용암온천이 보인다.
산방을 찾은 일행 앞에 앉은 좌측이 박복규선생 가운데 필자 오른 쪽 김상기선생
매화심기
매화심기
산방의 정자
산방입구
청도의 명소 호골영토산방(湖骨嶺土山房)의 율곡·남명매
초등학교 교감을 지내고 은퇴하여 현재는 숲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상기님을 통하여 박복규님을 만났다.
청도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자 칼럼니스트, 저술가,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용헌씨도 그의 산방을 거처 갔다고 했다. 방문하기 전날 박 선생이 알려 준 ‘호골영토산방’을 검색하니 2006년에 조선일보에 게재된 원문이 나왔다.
명절 때는 모든 고속도로가 심하게 정체되지만 비교적 덜 밀리는 고속도로가 영남과 호남을 잇는 ‘88고속도로’이다. 광주와 대구 사이에는 혼맥(婚脈), 학맥(學脈), 상맥(商脈)이 별로 없어서 왕래할 일이 적었다. 이렇게 삼맥(三脈)이 약할 때는 풍류맥(風流脈)을 가동시켜야 한다. 풍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지 않던가!
전남 장성에 있는 세심원(洗心院)과, 경북 청도에 있는 ‘호골영토산방(湖骨嶺土山房)’ 사이에는 요즘 영·호남의 풍류가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청도읍 삼신산(三神山) 자락에는 황토와 편백나무로 지은 13평 크기의 자그마한 산방(山房)이 하나 있다. 이 산방 이름을 ‘호골영토(湖骨嶺土)’로 지은 데에는 사연이 있다.
산방 주인인 박복규(60)씨는 경상도 토박이이지만 보길도를 비롯한 전라도 섬들의 고즈넉한 풍광과, 톡 쏘는 전라도 음식, 그리고 판소리를 좋아한다. 한 20년 사업 관계로 외국을 돌아다닌 끝에 비로소 조국의 산하(山河)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중에서도 전라도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람이 장성의 축령산 자락에 있는 세심원 주인 변동해(53)씨이다. 세심원은 광주·장성 일대의 풍류객들이 모이는 살롱인데, 이 세심원의 방바닥은 축령산의 편백(扁柏) 나무로 깔아 놓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방에 들어가면 편백 특유의 나무 향이 진하게 풍긴다. 편백의 향은 머리를 상쾌하게 만든다.
세심원의 편백 향에 매료된 박복규씨는 장성 축령산의 편백을 청도로 가져다가 통나무와 황토로 이루어진 산방을 짓게 된 것이다. 산방의 골재는 호남에서 가져온 편백나무를 사용하였으니 ‘호골(湖骨)’이요, 황토는 영남의 흙을 썼으므로 ‘영토(嶺土)’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이치에 딱 맞는 이름이 아닌가! 비록 방 한 칸과 거실 한 칸 구조의 작은 산방에 지나지 않지만, 호남과 영남이 모두 함께 녹아들어 있다.
산방의 외형은 20년 수령의 편백 통나무를 교차시킨 귀틀집이다. 8t 트럭 두 대분의 편백이 소요되었다. 통나무 사이에는 황토와 숯가루, 볏짚을 섞어서 다져 넣었다. 그래야 단단해진다. 벽두께는 45cm. 청도읍 삼신산 자락의 호골영토산방은 ‘자기를 방생(放生)’하고 싶은 청도의 풍류객들이 모이는 살롱이다.
워낙 글을 잘 쓰는 분이자 박학하기 때문에 그의 글을 거의 빠짐없이 읽은 나로서는 지척인 이곳 청도에 그가 다녀갔다는 사실만으로 이 산방이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칼럼에서 지적한 혼맥, 학맥, 상맥이 별로 없다고 하나 상맥(商脈)만은 그렇지 않는 것이 대구시민이 먹는 해남의 절임배추 등 많은 양의 채소류는 이 88고속도로를 통해 호남에서 공급된다.
2011년 3월 25일 토요일 오후 일행과 함께 방문했다.
그러나 늘 보아오던 절경에 위치한 곳도 아니고, 숲이 우거진 깊은 산골도 아닌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마을 뒤 언덕 배기여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철이 철인만큼 집 앞의 텃밭에 50(?)여 그루의 백매(白梅)가 만발하여 진한 향기가 가슴을 파고들어 일상에 찌든 심신에 활력을 주었고, 위로 올라 갈수록 조망이 좋은 것이 멀리 용각산이며 오례산이 눈앞에 다가오는 좋은 곳이었다. 박 선생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매화전문가 정옥님 여사로부터 몇 종의 매화를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마땅한 심을 곳이 없어 좋은 분이 사는 곳에 심는 것이 오히려 더 의미가 클 것 같아 가져갔다. 그 중에서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는 기호학파의 종조 이이(李珥, 1536~1584)가 태어난 강릉 오죽헌의 매화로 오죽헌(烏竹軒)이 들어설 당시인 1400년경에 심긴 것으로 알려진 고매(古梅)다.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해진다. 신사임당은 고매도, 묵매도 등 여러 매화 그림을 그렸고, 맏딸의 이름도 매창(梅窓)으로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하였다. 정 여사가 멀리 강릉까지 직접 가서 가지를 꺾어 와서 접을 붙여 생산한 어린 나무이며, 남명매는 퇴계와 쌍벽을 이루었던 영남학파의 한 분인 남명 조식(曹植, 1501~1572)이 61세에 덕산으로 들어가 산천재를 짓고 직접 심었다는 매화로 이 역시 가지로 접을 붙여 생산한 나무다.
비록 어린 나무이지만 이 매화들의 높은 가치는 종자를 뿌려 생산한 묘가 잡종일 가능성이 높은데 비해 모수(母樹)의 혈통이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율곡의 눈길과 남명의 손 떼가 그대로 묻어 있는 나무라는 점이다. 우리는 정성스럽게 나무를 심었다. 뒷날 풍류객들에게 많은 이야기 거리가 되었으면 한다. 작업을 마치고, 방안으로 들어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방안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황토와 편백나무가 만들어 내는 기가 몸 안을 감싸 도는지 피곤한 줄 몰랐다. 일행이 뒷산을 한 바퀴 도는 사이 나는 남아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었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발길이 한결 가볍다. 늙어갈수록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는 데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것 같다. 유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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