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공자가 심은 나무, 회(檜)를 말한다.

이정웅 2015. 7. 3. 21:33

 

공자가 심은 회나무와 선사수식회(檜)표지석, 사실은 향나무의 일종으로 보이나  현재 중국에서는 회백(檜柏)나무라고 한다.

진경산수화가 겸재 정선의 부자묘노회도(夫子廟老檜圖) 위 선사수식회나무와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상상해서 그린것 같다.

회나무 안내판, 몇 번이나 죽어다가 1732년 새로 돋아난 것이라고 한다,

산동성 문물여유국의 나무 이름판

회백나무의 전경

회백나무의 잎, 향나무와 닮았다.

공자가 심은 나무, 회(檜)를 말한다.

곡부(曲阜)여행을 준비하면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미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더니 특별히 관심을 끄는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선사수식회(先師手植檜)’라고 쓰인 표석과 한 그루 나무가 서 있고 그 밑에 ‘공자가 심은 나무’라고 설명해 놓았다.

평소 노거수(老巨樹)를 답사하면서 누가 왜 심었는지, 어떤 인물인지 생육상태는 어떤지를 알아보고 그 것을 글과 사진으로 정리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더 할 나위 없는 낭보(朗報)였다.

2,500여 년 전의 인물인 공자(孔子)가 심은 나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도 흥미롭거니와 사진의 회(檜)나무가 어떤 나무를 지칭하는 지도 궁금했다. 회(檜)는 자전(字典)에서 ‘노송나무’라하고, 회목(檜木)이라고 할 경우에는 ‘노송나무’ 또는 ‘전나무’라 한다고 풀이해 놓았다.

그러나 <한국수목도감(산림청·임업연구원)>에는 ‘노송나무’라는 나무가 없다. 다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향나무를 일러 ‘상나무 또는 노송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한자명은 향목(香木)·백진(柏稹)·향백송(香柏松) 등 여러 가지가 있고, 회(檜)·회백(檜柏)으로도 쓰이나 동명이종(同名異種)의 경우가 흔히 있다. 학명은 Juniperus chinensis L.이다.’ 라고 설명해 놓았다.

이런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부기관인 산림청의 수목도감에 없기 때문에 노송나무라고 하면 무슨 나무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지 수십 년이 되는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곡부에 가면 반드시 확인하고 사진에 담아 오리라고 마음먹었다. 김해공항을 출발해 청도에 내려 5시간 30분 달려 곡부에 닿았다.

각자 주어진 방에 여장을 풀었다. 4성급 호텔이라고 하나 냉장고도 없어 국부(國富)에 차이를 실감했다.

가이드에게 공묘(孔廟)에 가면 회(檜)나무가 있는 곳을 꼭 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다음날 공묘에 들어가니 평일인데도 인파로 넘쳐났다. 설명을 들으랴, 일행을 놓지 지 않으랴, 사진 찍으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따라다니다 보니 관람이 다 끝나고 다음 목적지인 공부(孔府)로 간다고 했다.

실망이 컸다. 그러나 나 혼자를 위해 다시 그곳으로 가자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올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행의 뒤를 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양해를 구하고 다시 가지 못한 것이 크게 후회가 되었다.

회(檜)가 어떤 나무라는 것은 맹묘에 가서 알게 되어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맹묘에도 공묘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많았다.

산동성 문물여유국(文物旅遊局, 문화관광국?)에서 나무에 붙인 팻말을 보니 회백(檜柏)이라고 적혀 있으나 실제로는 향나무였다.

외관상으로도 회나무와 똑 같았다. 다만, 우리나라 향나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수관이 우산과 같이 퍼지지 아니하고 줄기가 곧게 뻗으며, 그 끝에 수관(樹冠)이 형성된 점이었다.

귀국 후 더 살펴보았더니 진경산수화가 겸재(謙齋) 정선(鄭선,1676~1759)도 부자묘노회(夫子廟老檜) 즉 ‘공자묘의 늙은 회나무’라는 화제(畵題)로 그림을 남겼다. 그러나 그림에 등장하는 나무의 모양이 공묘에 있는 것과 달라 실물을 보지 않고 그린 것 같았다.

현존하는 공묘의 회(檜)나무는 당초 심었던 것이 아니라, 몇 번의 죽고 살기를 되풀이 했는데 지금의 것은 1732년(청나라 옹정 10, 영조 8) 새로 싹이 돋아난 것이라고 한다. 겸재의 그림은 공묘의 회나무가 우리나라 선비들에게도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나무를 우리나라에서도 노송(老松)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다. 퇴계의 증조할아버지 이정(李禎)이 선초 평안도 영변진에 약산성을 쌓고 돌아올 때 가져와 심은 안동시 주하리의 뚝향나무(천연기념물 제314호)가 있다. 이를 후손들이 끔찍이 아껴 그 나무를 심고 관리한 전말을 기록한 ‘경류정노송기(慶流亭老松記)’가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회(檜)나무를 두고 <국어사전>에서는 편백나무라고도 했다. 또 어떤 자료에서는 전나무, 노송나무, 상나무, 회화나무라고 하는 등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히말라야시다나 가이즈까향나무처럼 차제에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 그대로 ‘회백(檜柏)나무’로 통일했으면 어떨까 한다. <한국수목도감>에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것 같다.

조선 중기의 문신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를 기리는 성주의 회연서원(檜淵書院)의 회(檜) 역시 그의 학문이 공자로부터 비롯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