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진시황릉과 진시황릉박물관의 히말라야시다.

이정웅 2018. 7. 13. 17:11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 진시황 상

진시황릉박물관 입구

진시황릉 박물관 내 히말라야시다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외래수종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낌없이 심은 것 같다.

진시황릉병마용갱 전경

병마용갱 근경 실물 크기의 인물 상이 제 각각으로 다르다.

진시황릉 가는 길의 조경수 단순하면서도 매우 아름답다,

진시황릉 입구, 이곳의 주 조경수도 히말라야시다이다.

화청지 내의 히말라야시다.

진시황릉과 진시황릉박물관의 히말라야시다.

양귀비와 당 현종의 세기적인 로맨스현장 화청지를 본 다음 “진시황릉병마용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병마용은 진시황 재임 시부터 38년간에 걸쳐 무려 70만 명을 동원하여 만든 세계 최대의 무덤 속에 2,200 여 년 동안 감추어져 있던 진귀한 보석과 유품이 함께 묻혀 있던 유물이다.

1974년 양지발이라는 농부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우물을 파다가 발견하여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6,000여개의 실물 크기의 병마용과 마차, 무기 등 그 종류가 다양하고 규모가 커서 지금의 기술로도 만들기 어려운 우수한 유물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세계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박물관 입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6월 하순인데 날씨조차 섭씨 33도로 대구와 비슷하지만 체감온도는 오히려 더 높은 같았다. 검표를 마치고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 옆의 큰 히말라야시다 그늘에 서서 기다라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굳이 이채롭다고 표현한 것은 히말라야시다에 대한 노이로제 같은 병증이 있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구가 명색이 우리나라 3대도시의 하나라고는 하나 파리의 에펠탑이나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같은 대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없다.

한 때 대구시의 녹지정책을 담당했던 나는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가 그나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과 달리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기도 했다.

다른 사물도 마찬가지지만 나무도 보는 시각도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특성이나 심어진 배경,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평가한다. 이는 사회현상도 그렇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에 대한 평가는 엄격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내로남불”이 횡행(橫行)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동대구로의 히말라야시다에 대해서도 “뿌리가 얕게 뻗어 바람에 넘어질 염려가 있다” “늘 푸른 나무라 계절에 따른 변화가 없다” “우리 자생종이 아니고 외국에서 들어 온 나무다” 등 등 캐내고 다른 나무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2000년 태풍 제14호 사오마이 때에는 실제로 18그루가 넘어져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었다.

차가 많지 않을 때였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큰 피해는 없었으나 시장(市長)마저도 다른 나무로 교체할 것을 지시했으나 거부해 질책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 후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대구시가 많은 돈을 투자하여 버팀목을 땅 속에 묻고 가지를 적당히 자르고 솎아 보전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히말라야시다를 보전해야 하는 이유로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많아 삭막한 겨울철 대구시가지를 상록으로 유지해주고, 방문하는 다른 도시사람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이국적인 풍경에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개체할 때 드는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도로 양쪽에 플라타너스 한 줄뿐인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대구 사람들에게는 천대(?)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국은 달라 공자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공부(孔府), 맹자의 사당이 있는 맹묘(孟廟)는 물론 명소 화청지, 세계문화유산인 진시황릉과 박물관에도 심어져 있다. 그들로서도 히말라야시다는 외래종이다. 그런데도 기꺼이 수용하고 있다.

중국의 수목도감 <조경식물, 2002, 천진대학>에 의하면 “설송(雪松, 중국에서는 설송이라 한다, 북한 또한 같다, 우리니라는 개잎갈나무)은 히말라야산 서부와 카라코럼산이 원산지로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인도의 테리가뤌에 이르기까지 해발 1300~3300m지대에 수직 분포하며 ---중국에서는 1920년 도입되어 현재 요녕, 산동, 하북 등지에서 재배되고 있다”라고 했다.

이처럼 외래 수종이지만 자국은 물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명소에 기꺼이 심었다. 이런 포용 정신이 결국 찬란한 중국문화를 꽃 피운 것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에는 1902년에 건설된 계산성당과 1908년의 건설된 계성학교 등에 심어져 있다. 이를 두고 <대구신택지리, 2007 북랜드>는 벽돌 쌓는 기술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우수했던 중국인 기술자들에 의해 건립될 때 그들에 의해 심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 천주교 대교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가져와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히말라야시다는 우리로서는 낯선 나무이기 때문에 조경수 이외에는 크게 활용되지 않고 있지만 이집트에서는 수액을 미이라가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썼고,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는 백향목(白香木)이라 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 기둥으로 사용되었다고 하여 성수(聖樹)로 생각한다, 모처럼 외국여행을 통해 낯선 문물을 보는 즐거움도 컸지만 다양한 나무를 보는 즐거움도 빼 놓을 수 없었다. 이번 서안여행이 특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