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 이진상의 초상화
한주정사 지당의 수양버들
한주 이진상의 학문연마와 제자 교육의 산실 한주정사
주자와 퇴계의 학통을 계승하는 집이라는 뜻의 "조운헌도재" 현판
한주 종택(중요민속문화제 제255호) 사랑채
동방이학의 대가 이진상 선생과 한주정사 수양버들
3월 하순 성주 한개마을을 찾았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같은 피붙이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이유와 조선 후기 남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공조판서에 오른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1792~1871)의 종손(이수학)이 오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종가를 지키고 있는 곳이기에 가끔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른 봄이라 몇 집의 뜰에 산당화가 피어 있는 이외 다른 마을보다 유난히 많은 상사화가 잎을 내밀고 있는 것이 특이할 뿐, 아직 겨울 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응와 종택 앞의 수문장처럼 서 있는 회화나무는 잎을 낼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주(寒州) 이진상(李震相, 1818~1886)의 삶의 흔적이 녹아있는 한주 종택(중요민속문화재 제255호)은 달랐다. 지당(池塘)의 수양버들이 긴 가지를 늘어뜨리고 연녹색 새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더불어 매우 이채로웠다.
한주는 이곳 한개마을에서 출생했다. 7세에 『사략(史略)』을 읽는 것을 시작으로 13세에는 여러 경전에 통하고 제자백가의 책을 두루 읽어 학자로서 소양을 닦았다. 숙부 응와는 그에게 성리학에 전념하도록 권유해 『성리대전(性理大全)』 공부에 몰두하였다. 1849년(헌종 15) 소과에 합격해 성균관 생원이 되었다. 편액 조운헌도재(祖雲憲陶齋)’가 말해주듯이 그는 주자(朱子)와 이황(李滉)의 주리론(主理論)을 이어가고자 했다.
44세가 되던 1861년 기존의 학설을 보완해 『심즉리설(心卽理設)』을 정리해 마음(心)이 곧 이(理)라는 퇴계의 주리론을 계승했음에도 한때 이단으로 몰려 아들 승희가 주도한 『한주문집』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주는 이항로(1792~1868), 기정진(1798~1876)과 더불어 근세 유학 삼대가(三大家)로 불리고, 서경덕(1489~1546), 이황(1501~1570), 이이(1536~1584), 임성주(1711~1788), 기정진과 함께 우리나라 이학육대가(理學六大家)의 한사람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문집으로는 1895년(고종 32) 거창의 정천(井泉)에서 간행한 49권 25책과, 1902년 성주의 삼봉서당(三峯書堂)에서 간행한 22책의 개정판이 있다.
이외에도 『이학종요(理學綜要)』 『사례집요(四禮輯要)』 『묘충록』 『춘추집전(春秋集傳)』 『춘추익전(春秋翼傳)』, 『천고심형(千古心衡)』 『직자심결(直字心訣)』, 『구지록(求志錄)』, 『변지록(辨志錄)』 등 합하면 모두 85책이 된다.
문인은 137명으로 이들 중에는 아들 승희(承熙)와 더불어 곽종석(郭鍾錫)·허유(許愈)·이정모(李正模)·윤주하(尹胄夏)·장석영(張錫英)·이두훈(李斗勳)·김진호(金鎭祜) 등 소위 한주팔현(寒州八賢)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한주가 한수헌 동쪽에 지당을 꾸미면서 어떤 이유로 수양버들을 심었는지를 밝히는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다. 약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도 본성을 잃지 않는 나무의 모습을 닮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나무는 한주를 정자(程子, 송나라 유학자 정호, 정이 형제)로 비유했던 제자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 같다.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했던 면우가 한주의 제자가 된 것은 1870년(고종 7) 그의 나이 25세 때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면우는 몇 편의 버드나무를 소재로 한 시를 남겼다.
나무 인문학자 강판권 교수의 저서 『나무를 품은 선비』에서 강 교수는 면우를 “버드나무에게 배운 정신력으로 나라를 지키다”라는 소제목을 달고 “곽종석은 어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살아남은 버드나무처럼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삶에서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유승강(柔勝剛)을 확인할 수 있다”. 고 했다. 면우의 시 “버드나무 바람에 빛나고(楊柳風光)”는 다음과 같다.
비취색 비단 같은 버드나무의 지극한 이치는 베 짜는 북과는 상관없고 / 가냘픈 허리 같은 가지 길가의 예쁜 아가씨도 질투할만하네. / 동쪽에서 부는 바람 날마다 춘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하고 / 맑고 따뜻한 날씨 마냥 푸른 언덕에 퍼져 있네.
강(姜) 교수가 한주학파의 산실인 한주정사의 이 나무를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면우를 강인한 버드나무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 승희(대통령장) 부자는 기울어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투신하였으니 성주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이상설, 안중근 유인석 등과 독립운동을 했으며, 아들 기원(애족장)은 성주에서 만세운동을, 기인(애족장)은 아버지와 더불어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대에 조부손(祖父孫) 3대가 선비의 본분을 훌륭히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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