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경산인 이형희(李亨禧)선생과 성주 덤개마을 홰나무

이정웅 2019. 5. 15. 14:01


경북 성주군 월항면 덤개마을 경산이씨 집촌에 경산인 의당처사 이형희가 심은 홰나무

주민들이 세운 수식(手植) 유래비

덤개마을 출신 유학자 심익재, 백천, 학가재 3선생 유허비

삼익재 이천배, 백천 이천봉, 학가재 이주 3선생을 배햐하고 있는 덕암서원 강당

이의근 전 경북지사가 2006년 6월 16일 심은 기념식수 팽나무

경산이씨로 파리장서 독립청원운동에 참가한 4분의 사적비


경산인 이형희(李亨禧)선생과 성주 덤개마을 홰나무

 

 

 

옛사람들의 수식(手植) 문화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대개의 선비들은 은행나무나 회화나무(경상도에서는 홰나무라고도 하여 여기서는 표석에 쓰인 데로 홰나무라고 한다), 매화, 향나무, 대나무 등을 좋아했다. 특히, 은행나무는 공자가 행단(杏壇)에서 (사실은 은행나무가 아니고 살구나무임) 밑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데서, 홰나무는 주나라 최고 벼슬아치인 삼공(三公, 조선의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요한 국사를 논의할 때 이 나무를 마주하고 결정했다는 고사(古事)와 송나라 사람 왕호(王祜)가 홰나무 3그루를 심고 내 자손은 반드시 삼공(三公)이 될 것이다.” 하였는데 그 후 둘째 아들 단()이 재상에 올랐다는 이야기에서, 후손들이나 후학들이 벼슬아치나 유학자로 입신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향교나 서원, 마을 입구나 한복판에 심었다. 따라서 어떤 마을 지날 때 그 마을에 큰 은행나무나 홰나무가 있으면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반촌(班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구 동구의 옻골마을, 달성군의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유가읍의 구례마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성주 월항면의 덤개마을도 그중 한 곳이다. 한개마을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은 고려 중기 악거부정(樂居副正)을 지낸 이덕부(李德富)를 시조로 하는 경산(京山)이씨 집성촌이다.

고려에서 소부윤(少府尹) (), 양양도호부사 번(), 조선조 초 대사헌 이흥문 등이 배출되었지만 16~17세기에 와서 두드러지니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 1558~1604), 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 1567~1634) 형제와 백천의 삼종질 학가재(學稼齋) 이주(1599~1669)가 그들로 세칭 3 선생으로 불리며 덕암서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6)에 배향(配享)되었다. 세 선생의 간략한 이력은 다음과 같다.

 

삼익재는 아버지 침()과 어머니 이수(李樹)의 딸 광산이씨(光山李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아버지 침은 오건(吳健)의 문인이자 예학의 대가 한강 정구(鄭逑)의 손위 동서이다. 이모부 한강으로부터 글을 배우고 장현광(張顯光), 서사원(徐思遠), 여대로(呂大老) 등과 교유하였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학문에 전심하니 많은 선비가 공경하였다. 명성이 널리 알려져 여러 번 벼슬이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향리의 천곡서원(天谷書院)을 중건하고, 평생 경전을 연구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다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문인으로 양졸재(養拙齋) 정수(鄭錘), 월봉 이정현(李廷賢) 등이 있다. 특히, 월봉은 한개마을에서 최초로 대과에 급제한 인물로 성산이씨를 명문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한강의 만사(挽詞)와 여헌 장현광의 비명(碑銘)이 있으며 문집을 남겼다.

백천은 1601(선조 34) 사마시(司馬試, 조선 시대,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에 합격하였다. 형 이천배(李天培)와 함께 정구(鄭逑)의 문인이며, 1620(광해군 12) 스승 한강이 별세하자 그의 원묘(院廟, 사당)를 짓고 신도비의 건립과 문집간행에 노력하였다.

1627(인조 5) 정묘호란 당시 성주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그 공으로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다.

학가재는 1599(선조 32) 아버지 천증(天增)과 어머니 월성이씨 사이에 덤개에서 태어났다. 백천의 삼종질이다. 9세에 여헌 장현광(張顯光) 문하에 들어가 여헌십철(旅軒十哲)의 한 사람이 되었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효제충신(孝悌忠信)으로 입신의 근본으로 삼았다. 당대의 석학들이 그의 문하에서 나왔다. 그중에 남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이조판서에 오른 광주인 문익공(文翼公) 이원정(李元禎, 1622~1680)이 돋보인다.

 

덤개마을의 홰나무는 백천의 손자이자 윤()의 아들인 의당처사(毅堂處士) 형희(亨禧, 1615~1671)1600년경에 심은 것으로 전해 온다. 선대들의 높은 학덕과 인격을 계승하고 이후에도 이러한 후손들이 홰나무 뿌리처럼 대를 이어 많이 배출되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바람은 헛되지 않아 조선 후기 유학자 석연(石淵) 이우세(李禹世, 1751~1830)와 일제강점기 파리장서운동 유림 대표 137명 중 이현창(애족장), 이계준(건국포장), 이계원(건국포장), 이만성(건국포장) 4명의 독립운동가를 을 배출했다.

오늘날에도 각 처, 각 분야에서 선대의 유훈(遺訓)을 받들고 있으니 상북도 전 지사 이의근, 청도군수 이중근 형제,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상경, 노무현 정부 청와대 사회정책 수석비서관 이원덕, 전 재경성주문화사업후원회장 이하영, 전 성균관 부관장 이대열, 전 대종회장 이영석, 전 성주향교 전교 이갑도, 순심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종회장으로 종인들의 단합과 보본추원(報本追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무, 대종손 이태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