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중국 강서성 여산박물관의 박태기나무

이정웅 2019. 5. 18. 14:10


케이블카에서 본 여산의 일부 붉은 집들은 서양사람들의 별장이다.

여산에서 필자를 매료시킨 붓꽃(?)의 한 종류 몰래 가져와서 키우고 싶었다.

여산 중턱의 아름다운 호수 여금호

박태기 나무의 노거수, 백태기도 이렇게 아름답게 키울 수 있는 화목이라는 것을 알게했다.

박태기나무의 꽃 


중국 강서성 여산박물관의 박태기나무

 

     중국 강서성의 세계자연유산 여산은 72km2의 가야산보다 면적에서는 4배가 넘는 302km2이고, 높이는 1,474m로 가야산 1,430m와 비슷하다. 식물의 종 다양성 역시 가야산은 649종인데 비해 여산은 3,000종으로 4배 가까워 면적 기준으로 환산하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물의 서식조건이 기후, 토질 등 자연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고, 관찰한 기간 역시 1365일 중 (417, 18) 불과 이틀이라는 짧은 날인 것을 감안(勘案)하면 여산과 가야산을 비교하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소나무를 비롯해 진달래, 철쭉, 개불알풀, 담쟁이덩굴, 자주괴불주머니, 배풍등, 송악, 산벚나무 등 한반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을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 보니 본래부터 지구는 한 마을이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20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지구촌(地球村)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데 비하면 식물은 47천만 년 전부터 이미 지구촌을 이루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여산뿐만 아니라, 중국의 다른 곳이나 유럽, 일본 등 해외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자라고 있는 식물을 보면 우리 동포를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모양이 똑같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고 크거나 작은 것, 색이 진하고 옅은 것도 있는데 그것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흑인과 백인이 다른 것처럼 그가 자라온 곳의 환경에 적응하며 오랜 기간 진화해 온 데 따른 것이다.

여산은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저자 이시진(李時珍)도 이곳에 와서 약용식물을 연구했다고 한다. 또한 여산은 서향(瑞香)의 유래가 탄생 된 곳이기도 하다. “한 승려가 금수곡의 큰 바위에 기대어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코를 자극하는 매혹적인 향기에 잠이 깨어, 그 향기 짙은 꽃을 수향화(睡香花, 자면서도 맡을 수 있는 향기의 꽃)”라고 불렀는데 후대에 사람들이 길하고 상서롭다고 하여 서향(瑞香)으로 불렀다.”고 한다.

여산에서 특히, 눈을 사로잡게 한 특이한 풀꽃이 있었다. 각시붓꽃과 비슷하면서도 초장이 더 길고, 잎 면 역시 더 넓으며 꽃도 컸다. 몰래 가져와 관광기념으로 삼고 싶기도 하였지만 아름다운 이 꽃을 우리나라 사람들도 보고 즐거워했으면 하는 욕심에서다.

그러나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한 꽃은 여산박물관에서였다. 4월 중순이라 그곳도 산벚꽃이 만발하고 싱그러운 연녹색 잎을 막 내는 때였다. 그런데 자주색 꽃이 핀 화목이 눈에 확 들어오고 사람들이 모여 꽃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슨 나무가 이렇게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지 궁금했다. 관람(觀覽)을 서둘러 마치고 현장으로 갔더니 박태기나무였다.

우리나라에도 흔한 나무다. 정원에는 물론 고속도로 주변에도 많이 심는다. 꽃이 다닥다닥 붙어 밥풀떼기 나무라고도 한다. 중국 남북조 시대 이십사효(二十四孝)24명의 효자 중 남조(南朝)의 양() 나라(502~557) 때 전진(田眞)이라는 사람이 부모가 죽고 두 명의 아우 광(), ()과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분가하기로 하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그런데 뜰에 심어 져 있는 박태기 한 그루가 문제였다. 의논 끝에 세 조각으로 나누어 갖기로 했다. 다음 날 나누려고 현장에 도착하자 하자 잎이 시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이를 본 전진이 두 아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본래 한 뿌리에서 자란 같은 줄기인데 쪼개어 나누려 하겠다는 우리의 말을 듣고 시들어버렸구나. 우리 삼 형제가 나무보다 못하구나.”

그 후 삼 형제가 자르기를 그만두자, 다시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고, 잎도 무성해졌다. 이런 연유로 형제간에 우애를 상징한다고 해서 뜰에 즐겨 심는다. 대구 옻골마을 조선 후기 유학자 백불암 최흥원이 공부하던 동계정(東溪亭)에도 같은 뜻으로 심은 박태기나무가 있다.

또 비슷한 종류의 서양박태기나무는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 배신자 유다(Judas)와 관련이 있다. 16세기 화가 카스토르 듀란트(Castor Durante)가 그린 판화 에 유다가 목매 죽는 장면으로 등장하여 유다트리(Judas tree)로 불렸다. 십자가에 처형되는 예수님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목을 매 죽으려고 이 나무를 선택했을 때 나무조차 모욕을 느껴 꽃이 붉어졌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

나무의 유래나 전설 등을 늘어놓았지만 글을 쓴 목적은 박태기를 이렇게도 가꿀 수 있구나! 하는 기존의 통념에 대한 충격을 설명하려는 했다.

즉 지금까지 관목쯤으로 생각했던 박태기나무를 이렇게 크게, 그러면서도 오래 가꾸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명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여산 박물관 뜰의 박태기나무는 그동안 가졌던 나무 키우기의 고정관념을 달라지게 한 몇 종류 증 한 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