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시 손권의 장수 주유가 수군을 훈련시키고 , 염계 주돈이가 이호수의 연꽃을 보고 애련설을 지었다는 감당호
주유상
백락천의 대표시 비파행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침월정
감당호보다 더 잘알려진 연수정
일행과 함께한 기념사진
주돈이(周敦頤)의 애련설 무대 강서성 구강시 감당호
강서성(江西省) 구강시(九江市)에 있는 여산(廬山)의 도연명기념관, 백거이 유적지, 금수곡, 삼첩천폭포, 미려별장, 여산식물원, 여산박물관, 백록동서원 등과 성도(省都) 남창시의 등왕각을 보러 갔었다.
먼저 이틀 동안은 여산지역을 둘러보고 다음 남창으로 가서 등왕각을 보는 코스를 택했다. 가이드에게 애련설(愛蓮說)의 무대인 감당호(甘棠湖)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뜻 밖에도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로부터 불과 20여 분 거리에 있다고 했다. 다만 당초 지정된 코스가 아니었기 때문에 한 사람 당 만 원을 더 주어야 버스 기사를 설득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등왕각으로 가기 전 우선 감당호를 찾았다. 호수는 넓고 컸다. 현지인들에게는 연수정(煙水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주변의 울창한 숲, 넓은 공간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춤추고, 그 사이로 큰 붓으로 땅바닥에 물로 글씨를 쓰는 사람도 있고, 삼성매장도 보여 기분이 좋았다. 감당호는 원래 유비와 손권이 연합해서 조조와 싸운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전초기지였다고 한다.
삼국지 최고의 명승부로 불리는 적벽대전은 조조 25만, 손권-유비 연합군 5만 군사로 맞선 전투였다. 그러나 제갈량이 불러온 동남풍과 이를 이용한 주유의 화공(火攻)으로 연합군이 승리했다. 이때 오나라 사령관 주유는 이 감당호에서 수군을 미리 훈련 시켰다고 한다. 유비에게 천재 전략가 제갈공명이 있다면 손권에게는 명장 주유가 있었다.
이런 연유로 연수정에는 주유사적진열관을 비롯해 군사를 조련하던 주유점장대(周瑜點將臺) 등 주유(周瑜, 175~ 210)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외에도 왕양명, 백거이, 이발, 도연명, 주돈이 등 이곳과 인연이 있는 문인들을 기리는 오현각,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의 한 구절 “때마침 망망한 강에는 달빛만 젖어 드네. (別時茫茫江浸月)”에서 따온 침월정(浸月亭)이 있다. 특히, 현재 이름 연수정은 북송 때 학자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아들 주수(周壽)에게 중수하게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고문진보』에 나올 만큼 명문장으로 한 물풀일 뿐인 연꽃의 품격을 높인 애련설(愛蓮說)은 염계가 감당호의 연꽃을 완상하며 지었다고 한다.
“물과 육지에 나는 꽃 중에는 사랑할 만한 꽃이 매우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하였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좋아하는 것이 성행하였다.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으나 줄기는 곧으며, 덩굴을 치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
명작의 무대 감당호와 연수정 보기는 큰 행운이다. 그러나 철이 일러서 그런지 그 후 연(蓮)이 없어졌는지 실물을 볼 수 없음이 애석했다. 연꽃은 사실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시사하고, 부처님의 앉은 자리를 연화좌대(蓮花座臺)라고 하듯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 특히, 조선은 억불숭유정책이 국정과제여서 성리학이 주류를 형성하였고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마저도 『불씨잡변(佛氏雜辨)』으로 불교를 폄하(貶下)했다.
그름에도 이육이 경북 청도에 2만여 평의 연지를 조성하여 정자를 군자정(君子亭)이라 하고, 이천 부사 이세보가 애련정을 짓고, 퇴계가 도산서당 지당에 연을 심어 깨끗한 벗 즉 정우(淨友)라 부르고, 숙종이 1692년(재임 18) 창덕궁 후원에 애련지와 애련정을 지어 시공을 뛰어넘어 조선에는 연꽃을 주제로 지은 애련정 또는 연정(蓮亭), 군자정(君子亭)이 많다.
조선 후기 황해도 배천에서 사시사철 꽃을 가꾸며 평생 직접 체험한 내용을 기록하고,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화목의 개화 시기를 월별로 정리한 선비 유박(柳璞, 1730~1787)은 그의 저서 『화암수록(花菴隨錄)』에서 매화, 국화, 대나무, 소나무와 더불어 연을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題)에서 1등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사랑한 것은 주염계의 애련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연은 또 생명력이 강하다. 기원전 청동기시대 유물과 함께 출토된 연밥이 20세기에도 싹이 텃다는 보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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