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함양 관영(官營) 차밭

이정웅 2019. 10. 7. 20:32




영남학파의 종조 점필재 김종직 선생 초상화


함양군이 조성한 관영 차밭 조성지 표석, 기념물이나 사적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으며 공무원 견학장소로 활용해야 한다.

관영차밭 조성지에 심어 놓은 차나무, 잡초가 무성하고 생육상태가 좋지 못하다.  함양군 관광안내지도에도 없어 현장을 찾기 어렵다.

차나무꽃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호안림(護岸林), 상림, 제방에 나무를 심어도 무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장이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함양 관영(官營) 차밭

 

 

 

미관말직이지만 공직에 몸담았던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산림 공무원이었기에 식물을 매개로 선정을 베푼 목민관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목화를 들여와 백성들이 따뜻하게 몸을 보전하게 해 준 문익점(文益漸), 호두를 가져와 국민 간식거리 호두과자를 탄생하게 한 유청신(柳淸臣), 고구마를 도입해 굶주림을 해결해 준 조엄(趙曮) 등 여러 공직자가 있지만 그중에서 돋보이는 분이 공물(貢物)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차밭을 조성한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과 인삼재배법을 개발한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이다.

두 분은 관리로서 본분을 다한 이외 전자는 영남학파의 종조로서 김일손, 남효온 권오복, 유호인, 이주, 조위, 곽승화 등 많은 제자를 길러내 그들 중 정여창(鄭汝昌김굉필(金宏弼)을 문묘에 배향되는 인물로 키웠고, 후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백운동서원을 설립하여 조선 유학발달에 크게 이바지고 20199개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게 했기 때문이다.

차밭을 조성한 점필재는 1471(성종 2) 1475(성종 6)까지 함양군수로 재임했다. 신도비(장현광)에 의하면 고을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는 학문을 진흥시켜 인재를 양성하고, 백성을 편케 하고 민중과 화합하는 것을 힘썼으므로, 정사의 성적이 제일(第一)이었다. 그리하여 상이 이르기를, ‘종직은 고을을 잘 다스려 명성이 있으니, 승천(陞遷)시키라’” 하고, 승문원 참교(承文院參校)에 임명하였다라고 했다.

이런 평가와 걸맞게 그는 함양군민이 공물(貢物)로 바치는 차()가 지역 내에는 생산되지 않는데, 비해 조정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쌀 한 말에 차 한 홉을 바꾸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828(흥덕왕 3)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나무를 가져와서 지리산에 심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확인했다. 함양의 어느 깊은 골짜기에 남아 있지 않을까 하여 나이 든 사람들에게 찾아보게 하였더니 엄천사(嚴川寺) 북쪽 대숲에서 두어 그루를 발견했다.

일대를 차밭(茶園)으로 만들고, 부근의 땅을 사들여 차를 재배했다. 이 차밭이 관이 주도하여 조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관영(官營) 다원이다. 중국의 황실이 필요한 차를 조달하기 위해 직접 다원을 조성하는 사례가 있고 그 일은 지배층의 기호품을 생산하기 위한 것인데 비해 함양의 차밭은 백성들의 차 공물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조성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차밭을 조성하고 난 후 그는 소회를 다음과 읊었다.

 

신령한 차 받들어 임금님 장수케 하고자 하나 (欲奉靈苗壽聖君) / 신라 때부터 전해지는 씨앗을 찾지 못하였다 (新羅遺種久無聞) / 이제야 두류산 아래에서 구하게 되었으니 (如今得頭流下) / 우리 백성 조금은 편케 되어 또한 기쁘다 (且喜吾民寬一分)

 

대숲 밖 거친 동산 일 백여 평의 언덕에( 竹外荒園數畝坡) / 자영차 조취차 언제쯤 자랑할 수 있을까 (紫英烏紫幾時誇) / 다만 백성들의 근본 고통 덜게 함이지 (但令民療心頭肉) / 무이차 같은 명차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不要籠加粟粒芽) ---다원에 대한 두수 (茶園 二首)

 

함양은 일찍부터 고운 최치원을 비롯한 많은 수령이 다스렸다. 지금과 같이 선거로 뽑히는 것도 아니어서 특별히 열심히 할 필요도 없었고 그냥 시간 만 때우면 되었다. 가렴주구로 주민을 괴롭히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으로 알았다. 그러나 점필재는 달랐다. 학문을 진흥시키고 백성들의 삶을 구석구석 살폈다.

어느 때 보다 공직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즈음 점필재의 관영 차밭과 고운(孤雲)이 홍수로부터 함양을 지켜내기 위해 축조한 제방을 보호하기 위해 심은 상림(上林, 천연기념물 제154)은 모든 공직자의 귀감(龜鑑)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차밭 조성지는 함양군 관광 안내 지도에 표시가 없어 찾기 어렵고, 그나마 조성해 놓은 차밭은 잡초가 무성하고, 생육상태도 부실하다. 관리에보다 노력을 기울이고 규모도 더 확대할 것이며 기념물이나 사적지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경남도나 함안군의 신규 공무원은 물론 보수 교육 중인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직자의 견학 장소로 활용하고 차를 사랑하는 다인(茶人)을 중심으로 다회(茶會)를 열어 차 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그를 기릴 것을 제안한다.

선비가 많아 경상우도의 안동이라 불리는 함양, 노모를 모시기 위해 자원해서 부임한 이곳은 함양군민에게는 행운이었으나 본인에게는 비운이 싹튼 곳이기도 하다. 학사대에 걸린 간신 유자광의 시판(詩板)을 걷어낸 일로 훗날 부관참시(剖棺斬屍) 되는 불행을 맞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