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강당(사적 제170호)
2018년 11월 서원 밖에 옮겨 심은 금송
종전 서원 경내 도산서당 앞에 있던 금송
1855년(철종 6) 작성된 만인소(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으로 등재).
안동인의 자존심과 도산서원 금송(金松)
안동시가 시정 구호를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고 한 데 대해 처음에는 좀 의아하게 생각했다. 전국의 많은 기초자치단체의 한 곳일 뿐이고, 동방오현의 한 분인 퇴계라는 걸출한 성리학자가 배출되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오현은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과 더불어 다섯 분의 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 와서 이 구호가 과장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첫째는 전국 234개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도산(陶山, 주향 퇴계, 이황)과 병산(屛山 서애, 류성룡) 두 서원이 올해 7월 1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둘째는 전국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364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점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1792년(정조 16) 사상 처음으로 사도세자 신원을 청하는 이우(李瑀)를 소두(疏頭, 상소 책임자)로 하는 10, 057명이 참여한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집권세력 노론이 주도하던 국정을 바로 잡으려했다. 소두 이우(李㙖, 1739∼1811)는 안동 일직 출신으로 아호가 면암(俛庵)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부친은 소 퇴계로 불리는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아우 소산(小山) 이광정(李光靖)이다.
만인소 일로 훗날 완도군의 고금도로 유배되기도 했다. 사면된 후 참봉에 제수되었지만 사직하고, 숙부 대산의 유사(遺事)를 짓고 문집을 발간하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문집으로 『면암집(俛庵集)』이 있다.
이러한 저항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총 7차례가 있었다. 이 가운데 원본이 보전된 1855년(철종 6)의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해 달라는 소두 진성인 이휘병(李彙秉)의 10,094명이 참여한<사도세자 추존 만인소>가 한국국학진흥원에 의해 조선 지식인들이 행한 민주정치 초기 사례로 평가되면서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으로 등재되었다.
구호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은 이런 선대가 남긴 훌륭한 정신문화 자산을 새롭게 승화시켜 안동인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대내외에 선포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도산서원을 성역화하고 1970년 12,8 기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금송(金松)이 2018년 11월 서원 밖으로 밀려난 것을 보면서 다소 실망했다. 집권세력에 저항하기 위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만인(萬人)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리고, 독립운동가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안동인들이 맞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정부가 지정한 문화재(사적 제170호)라 안동시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행해진 일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이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의 발단은 시민운동을 하는 모(某) 스님이 금송은 원산지가 일본으로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도산서원에는 맞지 않고, 또 처음 심은 것은 죽고 새로 심은 나무인 만큼 기념식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으니 밖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글로벌시대에 나무의 원산지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렇다면 향교에 주로 심는 은행나무나 서원에 주로 심는 회화나무도 원산지가 중국이며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는 셰계 각국에서 제페니스 례드 파인 (Japanese Red Pine ) 즉 일본 적송(赤松)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논리라면 소나무도 베어버리거나 없애야야 될 것이다. 또 기념식수를 할 때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대통령이 직접 고르는 것이 아니라, 참모들이 심을 곳의 특성을 고려해서 선택한다. 또 금송은 비록 일본이 원산지라고는 백제 제25대 무령왕의 관재(棺材)로 쓰일 정도의 일본과의 교류의 상징이고, 아라우카리아, 히말라야시더와 더불어 세계 3대 미수(美樹)의 하나로 불리는 만큼 당시에는 도산서원의 품격을 고려하여 최고급 수종을 고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처음 심은 것이 죽자 1973, 4, 22 새로 심어 식수 의미가 퇴색했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심은 나무가 죽으면 같은 종류의 나무를 새로 심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간 정원의 하나로 꼽히는 담양의 소쇄원에는 현인(賢人)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뜻의 대봉대(待鳳臺)가 있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고 벽오동 나무에 깃든다는 속설에 빗대 그 주변에 벽오동을 심었다. 그러나 세원이 흐르면서 그 나무가 죽자 후대에 새로 심어 처음 정원을 만든 이의 식수 의미를 되살리고 있다. 즉 송덕비의 빗돌이 마모되면 새로 세우는 것과 같다. 모 스님의 주장은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발로일 뿐이다.
그의 주장을 설득하지 못하고 밖으로 옮겨 심은 것은 이 땅에 가난을 몰아내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발판을 마련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아니려니와 한 때 집권세력에 대항하여 만인소를 올렸던 안동인의 기개가 퇴색된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나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척화파의 영수 김상헌 선생과 풍산 서미리 강린당 회화나무 (0) | 2019.11.25 |
---|---|
은진인 임훈선생과 거창 갈계숲 (0) | 2019.11.12 |
인천이씨 국동문중 재사 유화당의 애국설 현판 (0) | 2019.11.02 |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함양 관영(官營) 차밭 (0) | 2019.10.07 |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과 면천 은행나무 (0) | 2019.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