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 소나무와 잣나무

이정웅 2019. 12. 11. 11:43


유배중에 그려서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준 세한도(국보 제180호), 나무를 화제(畵題)로 그린 그림 중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었다.

제주추사 기념관 경내에 있는 추사상

유배생활 중 추사가 머물렀던 초가


예술가로서 추사를 말하라고 한다면 서예가들은 추사체(秋史體)라는 독창적인 필법을 창작한 점을 들 것이고, 문인화가라면 최상의 문화재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국보 제180)를 들 것이다.

특히,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25세 때 아버지를 따라 연경(, 북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씨를 가져와 고향 예산에 심은 백송(천연기념물 제106)과 나무를 화제(畫題)로 삼은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가 큰 감동을 준다.

그림 세한도와 필법 추사체는 공교롭게도 유배지 제주에서 탄생했다. 시점도 당시로 서는 여생을 평안하게 마무리할 노년이다.

1840(헌종 6) 55세 때 윤상도가 호조판서 박중훈과 유수를 지낸 신위, 어영대장 유상량 등을 탐관오리로 몰아 탄핵한 사건에서 윤상도가 올린 상소문의 초안을 추사가 잡았다는 이유로 그해 10월 절해의 고도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1848(헌종 14) 12월 해배(解配) 될 때까지 햇수로 9, 만으로는 83개월 동안 63세에 이르기까지 제주도에 머물렀다. 귀족 출신으로 정3품 형조참의라는 고위직을 지낸 그로서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아내 예안이씨 마져 죽자 상심이 컷지만 하루아침에 변한 인심이 더 큰 상처가 되었다. 59세인 1844(헌종 10) 세한도를 그리게 된 동기는 발문(跋文)에 잘 나타나 있다.

 

지난해(1843, 헌종9)만학집(晩學集)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두 책을 부쳐주었고, 금년에 또 우경(藕畊)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을 부쳐주었다.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때에 해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도한 풍조는 오로지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것이다. 이들 책을 구하려고 이와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는데, 이것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에게 갖다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와 재력가에게 붙좇듯이 안겨주었다.

사마천(司馬遷),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하였다. 그대 역시 세속의 거센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붙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마천의 말이틀렸는가?

공자(孔子)께서, ‘일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소나무·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 없는 소나무·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빈객들이 그들의 부침(浮沈)에 따라 붙좇고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하규(下邽) 땅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을 써 붙여 염량세태(炎凉世態, 권세가 있을 때는 아첨하여 좇고, 권세가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의 인심)를 풍자한 처사 따위는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이는 처지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 인심인데 오직 제자 이상적(李尙迪)만은 늘 푸른 송백과 같아 그 답례로 그림을 그려 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화제가 된 논어 자한(子罕) 편의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의 송백(松柏 또는 松栢)을 두고 대게의 경우 소나무와 잣나무로 해석한다.

그러나 임학자들은 잣나무((Pinus koraiensis Sieb Zucc)가 아니고 측백나무라고 한다. 왜냐하면 잣나무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중국에서는 만주 일부를 제외하고 공자가 논어를 집필한 산동성 곡부지역에는 자생하지 않으며 영미식 이름도 코리안 파인(Korean pine)이다.

반대로 측백나무(Thuja orientalis L.)는 우리나라 대구시 동구 도동 등 극히 일부지역에 자생지가 있지만 산동성 곡부지역은 산에는 물론 가로수로 심을 만큼 개체수가 많다. 중국 원산지인 회화나무와 우리나라 느티나무를 한자로 괴목(槐木)이라 하는 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고전 등 한문서적을 번역할 때 식물학자의 고증이 필요한 이유다.

또 박상진 교수(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저자)는 세한도에 등장하는 4그루 나무에도 대하여도 그림 좌로부터 오른쪽으로 3그루는 곰솔(해송)이고, 맨 오른쪽의 가지가 휘고 수피의 윤곽이 뚜렷한 한그루는 소나무로 보았다.

명작 세한도를 이런 이야기를 더해서 감상하면 상상력이 더 풍부해 질 것 같아 풀이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