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심훈의 소설 상록수는 향나무다

이정웅 2019. 12. 21. 20:23


독립운동가 심훈 상, 그는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 언론인으로 온몸으로 일본에 저항했다.

그가 심었다는 향나무 이 나무가 소설 상록수의 제목이 되었다.

그가 귀향하여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 필경사


심훈의 소설 상록수는 향나무다

 

 

국민소득 3만 불이라는 지금. 가난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손전화로 국내는 물론 세계 어느 나라와도 통화할 수 있고, 영양 과잉으로 비만이 질병으로 간주 되는 요즘은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산다. 어떤 이는 황제보다 더 호사롭고, 단군 이래 가장 풍요를 누린다고 한다

그러나 6, 25 때 미숫가루 포대를 들고 피란길을 걸었고, 초등학교 때에는 술찌기미로 한 끼를 때우며, 보리밥 도시락을 어깨에 메고 10리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또래들의 청소년기를 보냈던 60년대는 가난은 큰 짐이었다. 또 특별한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따라서 가난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이러한 분위기는 개인만 아니라.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부자 농촌을 만들고자 했다. 그때 닮고자 했던 나라가 낙농업으로 부흥한 덴마크였고, 두 지도자 즉 덴마크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 그룬트비히(Grundtvig)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비옥한 토지를 빼앗겨 실의에 빠진 덴마크 국민에게,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며 황무지 개간을 독려했던 달가스(Dalgas)를 존경했다.

심훈(沈熏)의 소설 상록수도 한몫했다. 남자 주인공 박동혁(실제 인물, 심재영)과 여자 주인공 채영신(실제 인물, 최용신)을 롤모델로 삼았다. 1961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상록수는 젊은이들의 의욕을 더욱 북돋웠다.

소설 상록수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동아일보사 창간15 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작으로 같은 해 910일부터 1936215일까지 <동아일보> 연재되었다.

이 소설의 평가는 세속적 성공을 포기한 농촌운동가의 희생적 봉사와 추악한 이기주의자들의 비인간성의 대비를 통해서 민족주의와 종교적 휴머니즘 및 저항의식을 고취한 작품이다. 이광수의 과 더불어 일제 당시의 농촌사업과 민족주의를 고무한 공로로 한국 농촌소설의 쌍벽으로 평가된다. 식민지 현실을 의식한 이 작품은 계몽운동자의 저항의식을 형상화 시킴으로써 이상으로서의 계몽을 앞세우는 낭만적 수사의 한계를 벗어나, 구체적 상황에 입각한 농민문학의 기틀을 확립하는 데 공헌하였다.”라고 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소설 상록수는 60년대에도 뜻 있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 4H 활동 등 농촌 계몽운동에 전개하고 이후 이들은 새마을 지도자로 성장하여 농촌환경개선과 소득증대사업에 앞장서게 했다. 이러한 개혁 운동은 농촌뿐만 아니라 직장에도 번져 부조리한 사회를 개선하고 또 하면 된다는 자조 정신을 일깨워 온갖 역경에 굴하지 않는 정신 무장을 하게 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소득 3만 달러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놓친 것도 있었으니 자식들에게 염치와 예절,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조국에 대한 애정 등 국가관을 가지도록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때의 젊은이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가 공무원이든 노동자이든 회사원이든 비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상록수 정신으로 도전했었다. 되돌아보면 오직 잘살아 보자는 생각 하나만으로 쉼 없이 달려왔었다. 이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필자의 경우에는 나무를 좋아하다 보니 젊은 날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상록수가 어떤 나무를 지칭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어느 날 저자 심훈(1901~1936)이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와 직접 설계해서 짓고 명작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筆耕舍)를 찾았다. 한 귀퉁이에 큰 향나무한 그루가 보이고 그보다 작은 사철나무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그루 상록수였다.

해설사에게 이나무가 소설 상록수의 제목이 된 나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갑자기 실망감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향나무야말로 소설 제목의 상록수라고 믿고 싶었다.

계절과 무관하게 늘 푸른 상록수에는 사철나무, 향나무를 비롯해 소나무, 주목, 측백나무 등 여러 종류가 있다. 필자가 굳이 향나무로 믿고 싶은 것은 태우면 향기를 내는 나무는 향나무뿐이다. 자신을 불살라 세상을 밝히는 촛불과 같고 심훈이 내 세운 박동혁·채용신 역시 자신을 불태워 세상을 바꿔보려고 한 사람들이라 같은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 후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어떤 분이 필경사를 지을 때 심훈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소설 상록수는 바로 이 향나무를 두고 쓴 작품이 틀림없다. 온몸으로 일제에 저항해 온 그의 혼이 깃든 나무이기도 하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는 우리나라가 모델로 삼았던 덴마크의 국화(國花)는 클로버(토끼풀)이다. 흔히 풀 중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잔디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잔디보다 더 강한 풀이 클로버이다. 정원의 잔디밭을 아무리 잘 가꾸어 놓아도 클로버가 들어가면 관리에 여간 힘들지 않는다. 뽑고 뽑아다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덴마크는 꽃도 화려하지 않은 클로버를 나라꽃으로 선택했다. 독일에 빼앗기고 남은 거친 모래땅을 기름지게 하는 데에는 클로버만한 풀이 없기 때문이다. 클로버를 심어 우선 땅심을 돋우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목초를 심어 젓소 등을 키워 낙농업을 발전시켜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명문 청송심씨 후손 심훈의 윗대는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아버지 영의정 심온(沈溫, 1375~1419)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