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 도매시장 이전 유감
지금은 다 철거되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대구 칠곡지역(혹은 강북지역이라고도 한다) 시민단체는 물론 소위 관변단체에 이르기까지 도매시장 이전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동네 곳곳에 붙어있었다.
그러나 속내마저 거두어들인 것 같지는 않다. 이런 현장을 보면서 40여 년 전 농수산물 도매시장을 매천동으로 선정했던 실무자로서 마음이 착잡했다.
왜냐하면, 최근 지역 정가(政街)와 대구 시정의 큰 이슈가 된 도매시장의 이전 문제가 일어날 줄을 상상을 못 했을 만큼 부지선정이 시장을 비롯한 국, 과장의 영향 없이 담당자 선에서 결정되었고, 비록 서울 가락동시장에 이어 전국에서 2번째로 건설되었으나 거래금액이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도매시장으로 성장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1984년 이상희 전 시장 재임 시 수립된 <대구시도시기본계획>의 유통시설 배치계획은 안심(용계동), 칠곡(매천동), 월배(남대구IC부근), 서대구 4곳으로 농수산물은 안심에. 칠곡(매천동)은 화물터미널과 창고부지로 결정되어있었다. 그러나 칠곡을 선택했다. 첫째 상정과(그 당시 농수산물을 제외한 대구시 상업 및 유통업무는 상정과가 담당했다)에서 이미 유통단지를 조성하기로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고, 둘째, 예정부지에 접해 북부화물터미널이 운영 중이라 농산물 수송 차량의 이용이 쉬우며 셋째, 부지 내 광야지라는 저수지와 대구시 소유의 분뇨처리장(일명 똥통)이 있어 부지 매입비를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상당한 면적의 분뇨처리장은 칠곡이 직할시(현, 광역시)로 편입되기 전 칠곡지역 농민들이 부족한 비료를 확보하기 위해 경북도에 건의하여 대구시에서 수거하는 분뇨를 받아 두었다가 필요한 농가에서 가져가 거름으로 사용하던 저류조(貯留槽) 역할을 하던 곳이다.
토지매입은 북구청이, 건설은 종합건설본부가 담당했다. 보상가가 평당 3~5만 원(?) 정도로 낮아 매수에 애로가 많았으나 칠곡 출신 담당자가 평소 교분을 바탕으로 큰 어려움 없이 지주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통계를 보면 2021년 농수산물 거래량은 527 천 톤, 2023년 거래금액은 9,280억 원이다. 이 금액은 2023년 북구청의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한 8,751억 원보다 많다. 다시 말해서 북구청보다 더 큰 기업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만 명 이상 사는 칠곡(북구 읍내동을 비롯한 8개 동)은 주민이 취업할 기업이 없는 일명 베드타운(bed town)이다.
또한, 1981년 직할시에 편입된 후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고, 팔거천이 정비되는 등 주거 환경이 많이 나아졌으나 법무부 소년원, 자동차운전면허시험장, 국군 50사단 등이 도시발전을 저해해 대구시에 편입된 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에 소외감을 느낀다.
주민 김 모씨의 말에 의하면 도매시장마저 이전되면 1,200여 명 정도의 일자리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도매시장과 연관된 농산물보관 창고업, 고추장, 된장 등 장류업, 포장업, 종묘상, 식육점 등 관련 사업장 이전으로 800여 명의 일자리를 잃어 마을이 공동화할 것이라고 한다.
현재, 도매시장이 노후화되고, 좁다면 지하화할 것은 지하화하고 고층화할 것은 고층화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팔거천의 도매시장 연접 일부 복개 하면 어느 정도 면적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가락동 시장도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본받을 것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당초 충분한 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때에는 농산물 수요에 따라 안심이나 월배 쪽에 추가로 건설하여 분산 배치할 계획이었다. 특히, 이전 후 후적지 개발에 대한 청사진도 제사하지 아니하고 이전을 서두르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실망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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