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노인이 수로부인에게 꺾어준 꽃은 철쭉이이 아니고 진달래 이다
철쭉
산철쭉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
소월의 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로 시작되는 ‘진달래꽃’은 많은 국민이 애송하는 시이자 꽃 역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꽃이다.
어린 시절 십여 리나 되는 초등학교를 걸어 다닐 때 뒷동산을 누비며 진달래를 따먹던 아련한 추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맛도 맛이지만 당시 산에는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봄이면 온 산이 붉은 꽃으로 뒤덮여 있다시피 했다. 그러나 요즘은 산이 우거져 집단적으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다.
오래 동안 산림공무원으로 재직했던 나는 산불이 나서 새로 나무를 심어야 할 곳이거나, 아직도 나무를 심을 공간이 있어 조림(造林)을 해야 할 곳이거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공원, 고속도로, 국도 변의 어느 한 곳에 진달래를 집중적으로 심어 시의 무대가 된 영변의 ‘약산’과 같은 진달래로 뒤덮인 산을 하나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실패하고 말았다. 제때에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억새 등 건조한 곳에서도 자람이 왕성한 풀들이 많아 사후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또한 관리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외진 곳에 심어 그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 지면서 거의 도태(淘汰)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순수한 우리나라산 진달래는 묘목이 없어 일본에서 개량되어 들어온 영산홍 계통(산철쭉이라고 하나 이 역시 우리나라 산철쭉과 다른)의 품종이다 보니 기후 풍토에 맞지 않는 것도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훗날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사전에 면밀하게 검토해 보지 아니하고 실행에 옮겨 시민이 낸 세금을 낭비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가진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자라는 산에 화목류를 심을 때에는 토양도 점검해 보아야하지만 미리부터 키가 어느 정도 커서 풀이나 잡목과 경쟁해도 이길 수 있는 왕벚나무나 이팝나무, 모감주나무 등이 적당할 것 같다.
진달래과의 나무로 대표되는 수종으로 진달래, 산철쭉, 철쭉이 있다. 꽃이 피는 시기나 모양, 특징이 다소 다른데도 불구하고 일반시민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혼동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진달래는 영남지방에서는 ‘참꽃’이라 하여 따서 먹거나 어머니들이 전(煎)의 모양을 예쁘게 하기 위한 재료로도 활용했으며, 소주에 넣어 술 두견주(杜鵑酒)를 만들기도 했다. 반면에 산철쭉은 ‘개꽃’이라 하여 먹을 수 없음은 물론 진달래와 달리 꽃과 잎이 거의 동시에 나오고 꽃 턱을 만지면 끈적거려 쉽게 구별되며 꽃 피는 시기도 진달래보다 약간 늦고 자라는 곳도 계곡부가 많다. 매년 "수달래 축제"가 열리는 청송소재 주왕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의 설명에 의하면
“수단화(水丹花) 또는 수달래는 다른 지방에서는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꽃으로 주왕산 계곡에서만 피는데 아름다운 이 꽃에는 남모르는 서러움이 숨어 있으니 옛날 주왕이 마장군의 공격을 피해 주왕굴에 숨어 지내던 어느 날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가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을 때 그의 피가 냇물에 섞여 붉게 흘러내렸는데 그 이듬해부터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꽃이 피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 꽃을 주왕의 피가 꽃이 되어 핀 것이라 해서 수단화(壽斷花)라고도 하였다 한다.”고 하여
수단화(水丹花)와 수단화(壽斷花)를 함께 사용하여 안내문을 읽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으나 전자는 ‘주왕을 잊지 못하는 꽃’이라는 뜻인 것 같고 후자는 ‘주왕의 목숨을 끊은 꽃’이라는 뜻이 아닌가 여겨지나 이 역시 산철쭉을 두고 하는 말로 친절한 설명과 달리 주왕산에서만 피는 꽃은 아니다.
철쭉은 꽃이 이들 두 나무보다 비교적 클 뿐만 아니라 꽃이 피는 시기도 늦고 소백산 비로봉 등 주로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대구지역에서는 비슬산자연휴양림 정상부 일대에는 진달래가, 유가사의 주산인 대견봉(大見峰)일대에는 철쭉이 큰 군락을 이루어 꽃이 필 때 장관이다. 항간에는 진달래의 개체수가 옛날보다 많지 않는 것을 두고 토양이 산성화되어 그런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으나, 산이 우거져 햇볕을 유난히 좋아하는 진달래가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수로부인(水路夫人)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신라(新羅)의 순정공이 강릉 태수(太守)로 부임하러 가는 도중에 그의 아내 수로부인이 동행한 수행원들에게 높은 절벽 위에 핀 진달래를 보며 꺾어 주기를 바랐으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고 주저 할 때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한 늙은이기 꺾어 주면서
붉은 바위 가에서 / 손에 잡은 어미 소 놓으시고
나를 부끄러워 아니 하시면 / 꽃을 꺾어드리오리다
라는 헌화가(獻花歌)를 지어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원문(原文)의 꽃 이름 '척촉(躑躅)' 즉 진달래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철쭉으로 번역하고 있어 유감이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철쭉과 진달래는 비슷하기는 해도 품종이 엄연히 다르다. 이 점 착오 없었으면 한다.
또한 우리는 이 헌화가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꽃으로 마음을 전하는 풍습이 서양에서 전래된 것이 아니라 신라시대에 이미 행했던 아름다운 풍습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많은 나무가 그렇지만 중국에도 진달래가 자란다. 다만 이름을 우리나라와 달리 두견화(杜鵑花)로 부르며 다음과 같은 애틋한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중국의 촉(蜀)나라에 망제(望帝)라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강가를 거닐 다가 죽은 시체가 강물을 거슬러 떠내려 오다가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나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너무나 기이한 일이라 왕이 그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나는 형주에 사는 별영(鱉靈)이라는 사람인데 강가에 나갔다가 물에 빠졌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망제는 이 사람이 하늘이 자기에게 보낸 현인(賢人)이라 생각하고 높은 벼슬을 주어 중용했다. 그러나 별영은 다른 신하들과 짜고 마침내 망제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나라를 빼앗기고 타국으로 쫓겨난 망제는 조국 촉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는 마음과 별영의 배신에 대한 원한으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울다가 죽어 두견새가 되었다. 그는 새가 되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아니하고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목구멍에서 붉은 피를 토했다. 그 피가 진달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 때 북한의 나라꽃이기도 했던 진달래에는 이런 슬픈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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