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야기

정절 있는 여성을 상징하는 광나무

이정웅 2007. 1. 2. 15:30

 광나무

 녹색 수림대를 이룬 수목원 북쪽 비탈면

 광나무 열매 생약명으로는 여정실이라고 한다.  

 

광나무는 가시나무, 후박나무, 호랑가시나무 등과 같이 난대지방 수종이나 대구에서도 잘 자라는 상록 활엽수이다. 따라서 대구는 이들이 있어 겨울 풍경이 보다 윤택하다. 20여 년 전 푸른 대구 가꾸기에 초석을 놓으신 이상희 시장님에 의해 많이 심어졌다. 두류공원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난대림을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로서는 퍽 의외(意外)라는 입장이다.

대구수목원은 주 관람공간은 물론 비탈면도 쓰레기가 뭍인 곳이다. 특히 북쪽 입구 쪽의 언덕처럼 생긴 비탈면은 한삼덩굴 등 풀만 자라고 있어 겨울이 되면 삭막해 보인다. 뿐만 아니라 흙을 약간 덮어 두었기 때문에 장마 때 유실되거나 붕괴될 우려마저컸다.

나는 토사유출로 인한 비탈면의 붕괴도 막고 겨울에도 푸르게 할 방안으로 광나무를 심었다. 

수목원 조성에 매달리다가 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가끔은 그곳에 들렀으나, 워낙 바빴던 관계로 사무실 일만 보고 귀청(歸廳)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휴일 등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찾으면 내 숨소리까지도 기억하던 영리한 개 들순이(수목원 조성 당시 현장에서 주어 기른 들개)와 또 다른 개 해피와 같이 찬찬히 한바퀴 돌아보면서 어느 한 구석 내 발자국이 남아 있지 않는 곳이 없는 수목원을 살펴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가뭄으로 그랬는지 애써 심었던 왕대며 광나무, 조릿대의 생육상황이 형편없어 실망이 컸다. 그 후 3년여가 지난 어느 겨울 역시 이들과 함께 비탈면을 돌아보았더니 아 글쎄 80%정도가 살아남아 한겨울에도 푸른빛을 발산하고 있지 않는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광나무에 대한 또 하나 잊지 못할 추억은 나무심기 광고였다. 

1996년 봄, 민선 시정부가 시민 참여를 유도하고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에 대한 시정부의 의지를 널리 알리려는 차원에서 역내(域內) 각 일간지의 맨 앞면에 이른바 ‘통광고’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광고비가 만만치 않게 드는데 비해 예산은 한 푼도 확보되지 아니하였고 또한 광고 문안도 구체화해 놓지 않았다.

나는 상사에게 보고를 하고 당시 호황이던 대구지역 유력 건설회사인 청구, 우방, 보성, 화성 등 4개 회사(會社)로 하여금 광고비를 협찬하도록 실무자들과 협의하는 데 성공하였다.

광고기획사 직원을 불러 시안(試案)을 짜도록 했다.

당시 잘 나가든(?) 기업이라 하드라도 광고비가 만만하지 않아 전결권이 없는 각 사(社)의 홍보 담당자를 설득하는 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 또 다른 난제는 광고비 문제였다.  당시 대구에서 발간되는 일간지는 모두 4개사였다. 뿐만 아니라,시에서는 어느 신문에는 내고 어느 신문에는 안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판매 부수가 다르고 그에 따라 광고효과도 다를 것이 분명한 데도 불구하고 비용은 동일하게 요구하여 조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협찬사가 부담해야 할 금액이 결정되었으나, 이번에는 출연할 모델을 구할 돈이  없었다.

고심 끝에 같은 과에서 서무 일을 보던 김학인(현 환경시설관리공단)님에게 부탁하여 본인은 물론 아내, 딸 등 한 가족이 출연하도록 하고 양묘사업소(대구수목원의 전신)에서 광나무 심는 장면을 연출해서 촬영을 마쳤다.

나의 무모한 용기(?)로 결국 해내긴 했지만 일개 사무관의 지원 요청에 거금을 선뜻 지원해 준 협찬 사 관계자, 돈 한 푼 안 받고 전 가족이 출연해 준 김학인 님의 고마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있어 광나무는 작게는 수목원의 비탈면을 푸르게 하는 데, 크게는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의 첫 광고모델로 등장해 녹색도시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한 나무로 기억된다.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은  '열매는 여정실(女貞實)이라 하여 음기(陰氣)와 허리와 무릅을 튼튼하게 하고 흰머리를 검게 변하게 하며 눈을 밝게 한다고 한다.'고 했으며, 진(晉) 나라 소언(蘇彦)은 <여정송서(女貞頌序)에서 '일명 동청(冬靑)이라하는 데 서리가 내린후에도 잎이 비취색을 띄고, 나뭇가지가 바람에 굴하지 않는다고하여 높은 뜻을 품은 선비들이 그 기질을 흠모하고 정조있는 여자가 그이름을 흠모하였다고 한다.'하였다.

광나무를 다른 말로 여정목(女貞木)이라하고, 열매를 여정실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고사로 생긴 이름 같다. 또한 광나무는 구더기를 쫓아 낸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