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단상

낙동강 중류지방 조선 유학 '낙중학'을 아시나요

이정웅 2010. 6. 8. 15:12

낙동강 중류지방 조선 유학 '낙중학'을 아시나요
 
 
 
▲낙동강 중류 지역의 조선 유학인 '낙중학'을 연구하자는 학술대회가 4일 계명대학교에서 열렸다.
'낙중학'을 연구하자는 목소리가 학계에서 처음으로 일고 있다. 낙중학은 대구, 선산, 고령, 성주, 칠곡, 영천, 청도, 합천 등 낙동강 중류 지방을 중심으로 한 고려 말과 조선 유학의 큰 흐름을 말하는 것으로, 낙동강 상류(이하 낙상)를 중심으로 한 퇴계학과 낙동강 하류(이하 낙하)를 중심으로 한 남명학과 구분하려는 학계의 시도다.

4일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원장 이윤갑) 주최로 계명대 의양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홍원식·한충희 계명대 교수, 이종호 안동대 교수,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실장, 정우락 경북대 교수, 김낙진 진주교대 교수 등은 학계 최초로 '낙중학'을 논의했다.

조선의 영남 유학은 흔히 낙상인 안동 중심의 퇴계학파와 낙하인 진주 중심의 남명학파를 말한다. 지금도 학자들은 자연스레 퇴계학과 남명학이라는 관점에서 영남 유학을 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낙동강 중류의 대구 일대가 조선 개국 이후 경상도의 수부(首府)로 그 중심에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역사·문화적 자리매김과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원인은 뭘까?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낙동강 중류 일대에 일어난 유학은 퇴계학 혹은 남명학이 끌어가거나 아니면 단순히 두 학파의 '절충'지역으로만 규정해 버렸다. 퇴계학과 남명학의 자장(磁場)이 센 것도 있었지만 '낙중'의 유학을 '변방' 혹은 '경계'의 관점에서 보았을 뿐 낙중만의 관점은 지금껏 학계 등에서 간과해 왔다는 데에 그 문제가 있다.

낙중학은 과연 변방 또는 절충지의 유학이었을까? 낙중지역은 일찍이 고려 말 영천 출신의 포은 정몽주와 선산 출신의 야은 길재가 유학(사림)의 씨앗을 뿌린 뒤 유학의 숲은 낙동강을 따라 낙상과 낙하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는 다시 전 조선으로 퍼져 16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사림의 시대를 맞게 된다.

낙상의 퇴계학과 낙하의 남명학 모두가 낙중 초기의 사림에서 태어난 것이다. 포은은 고려 말 달성 동화사에서 길재 등 13명과 모임을 가졌다. 13명의 제자 모두 낙중의 제유들이었다. 포은 순절 후 길재 등 제자 13명은 '두 임금은 섬기지 않는다'는 충절을 내세워 고향인 낙중으로 내려가 대의명분과 절의를 중시하는 도학(道學)의 전통을 뿌리 내렸다.

길재의 선산 행에서 시작해 낙중 일대는 길재의 제자인 강호 김숙자와 그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 청도 출신의 탁영 김일손, 달성 출신의 한훤당 김굉필 등 수많은 인재들이 쏟아졌고, 포은과 야은의 도통(道統)은 낙하의 밀양으로까지 퍼졌다. 특히 김종직은 연산군 때 '조의제문'으로 말미암아 두 차례 큰 화를 당했지만 그의 정신은 15세기 말 사림의 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16세기 중엽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은 포은과 야은, 점필재가 마련한 사림의 텃밭에서 나온 것이다.

16세기 중엽 이후 낙중학은 성주 출신의 한강 정구와 칠곡 출신의 여헌 장현광을 중심으로 계승된다. 이들 모두 당대 영남 유학의 큰 별이었다. 특히 한강은 퇴계학과 남명학 모두를 섭렵했고, 두 선생 사후 영남 전체와 경기 지역에까지 한강학파의 영역을 넓혔다. 당시 대구와 칠곡 일대의 학자들이 대거 한강의 학파에 들어와 낙중 일대는 한강학파가 화려하게 꽃피게 됐다.

여헌 역시 한강 사후 낙중 유학계 종장의 자리에 올랐고 독창적인 학문 세계를 이뤘다. 당시의 한강과 여헌의 학파를 이른바 '한려학파'라 칭하고 있다. 낙중학은 조선 말 장현광의 후손인 사미헌 장복추와 한주 이진상을 중심으로 그 맥을 화려하게 이었다. 사미헌은 여헌의 학문을 이었고 특히 성주 출신의 한주는 조선 말 '최대, 최고'인 한주학파를 열어갔다.

이윤갑 계명대 한국학연구원장은 "낙중학은 퇴계와 남명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여말과 조선 초 우리 역사에서 유학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때부터 그 운명이 다하는 조선 말까지 그 중심에 섰다"고 말했다.

또 홍원식 계명대 철학과 교수는 "낙중학은 낙동강 상류의 퇴계학과 낙동강 하류의 남명학과 함께 한국 유학의 중심 학문이다. 따라서 낙중학에 대한 학계의 지대한 관심과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