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태교에서 바라 본 팔공산
남소, 성당못
팔공산 미타봉(동봉의 본디 이름)
대구의 아름다운 10곳을 노래한 대구십경(十景)하면 사가 서거정(1420~1488)선생을 떠 올리나 5세기 후인 20세기에 와서 사가 선생이 지은 시의 운자(韻字)를 따서 대구십경을 노래한 분이 있었으니 일화(一和) 최현달(崔鉉達) 선생이다.
1867년 (고종4) 대구 남산리(오늘날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난 선생은 7세에 이미 시(詩)를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28세에 벼슬길에 나아가 경상남도 시찰사(時察使), 칠곡 군수, 대구 판관, 청도군수를 지냈다.
특히 칠곡 군수로 재직할 때에는 ‘사또가 오신 뒤에 우리가 살아났다’고 할 정도로 학교를 세워 백성을 교화하고, 세금을 경감하는 등 선정을 펴게 되자 지역 주민들이 생사당을 지으려고까지 하여 선생이 직접 나서서 중단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대구로 돌아와 죽기를 각오하고 식음을 거부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만류해도 뜻을 굽히지 않다가 친구들이 찾아가 ‘나라를 사랑하는 충(忠)도 중요하지만 어머니를 받드는 효(孝)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설득하여 마침내 풀었다고 한다. 총독부의 회유에도 끝까지 버티다가 1942년 76세로 이승을 마감했다. 저서로 ‘역수설(易數說)’ ‘주지유언(周旨孺言)’ 등과 후학들이 펴낸 ‘일화선생문집’이 있다. 그의 대구십경은 다음과 같다.
1 琴湖江 뱃놀이
금호강 봄 물 올라 배를 띄워 노는데
피리 소리 북소리에 백구는 놀라 다라나네.
차라리 가을달 밝은 밤에 고깃배 올라타고
백구 벗삼아 한가로히 놀으리.
琴湖泛舟
琴湖春水泛蘭舟
簫鼓聲聲起白鷗
何似滿江秋月夜
漁舟閒與白鷗遊
2 건들바위 (笠岩)고기 낚기
가을 강물 위 저 바위는 갓을 얹은 꼴이다.
낚싯군 앉은 모양이 유유히 한가롭네.
열길 먼지 속의 사모객이 그를 보니,
문뜻, 벼슬살이 할 정이 다 떠나네.
笠岩釣魚
川上岩形一笠秋
釣魚人坐更悠悠
十丈塵中烏帽客
看渠不覺宦情休
3 자래바위와 봄 그름
봄 구름 한 자락이 거북봉을 덮어있다.
거북과 구름은 만물을 은혜로 적셔 줄 뜻 품으시니,
맑게 빛나는 갠 날씨도 좋거니와
이따금 단 비도 내려주신다네.
龜岑春雲
春雲一抹是龜岑
龜與雲含澤物心
占得韶光晴亦好
時來況復作甘霖
4 琴鶴樓의 明月
학은 가고, 다락은 빈지 어느덧 千年이라.
다락머리 비친 달은 얼마나 차 있는고.
오고 보니 한가윗날, 달은 밝은데,
萬里나 길게 뻗은 하늘에는 티 한 점 없네.
鶴樓明月
鶴去樓空一千載
樓頭來照月幾分
我到中秋正圓滿
長空萬里絶纖氛
5 성당 못 연꽃
南塘(성당 봇) 맑은 경치 돈으로 따질 것가.
온 못을 덮은 연꽃, 향기는 배를 찼네.
원컨대 바람이 향기 실어 사방을 불게 하면,
여름 농부들 오래 된 병이 모두다 나으련만!
南沼荷花
南塘淸賞不論錢
十頃荷花香滿船
願此香風吹四野
夏畦人共宿痾痊
6 北壁의 향나무 숲
바윗벽 솟아 둘러 十里나 되네.
울창한 숲이 모두 향나무로고.
훗날 여기 와서 結社하련다.
늙은이 많은 분들이 내 고향사람이거늘.
北壁香林
石壁岧嶢十里長
鬱蒼林木盡檀香
準擬他年來結社
老人多是住吾鄕
7 桐華寺 중을 찾다
桐華寺 굽이굽이 층층히 돌길인데,
봄 바람이 흥을 돋아 다리도 감았다네(등산 채비).
물 소리, 달 빛 아래 법당에 당도하여
지난 가을 글 청해 간
그 중 있나 물어보네.
桐寺尋僧
桐寺迢迢石逕層
春風乘興理行縢
泉聲月色金堂畔
爲問前秋乞偈僧
8 櫓院 이별
櫓院의 버드나무 해마다 푸르렀다.
예로부터 여기는 이별하는 곳.
왜가리 東으로 가고, 제비는 西로 날고
주막집 술병은 이별주로 다 나가네.
櫓院送客
櫓院年年楊柳靑
古來離別此長亭
伯勞飛燕正怊悵
倒盡壚頭紅玉甁
9 八公山 쌓인 눈
八公山 萬丈雪이 쌓이고 또 쌓이니,
옥색 같이 영농하고, 은색 같이 맑았도다.
저 산이 다 곳간이고, 저 눈이 다 쌀이라면,
집집마다 해마다 풍년이라 즐기련만!
公嶺積雪
公山萬丈雪堆層(原字는 層옆에 뫼山이 있는데, 이런 글字는 ‘컴퓨터’ 사전에는 안 나와있으니, 손으로 써줄밖에요. 뜻에는 현재 字를 써도 별 손해가 없는데, 四佳선생이 원래 이런 어려운 字 를 쓰셨으니...)
玉色玲瓏銀色澄
願廩如山米如雪
家家歲歲樂豊登
10 砧山(침산)의 저녁 놀
강 물 서쪽 언득에 砧山 푸른 숲이 우거지다.
석양이 비추이니 그림 속의 가을이라.
높은 곳 올라서니 황혼 景色이 기막히네.
이 중에 사람 그리는 시름은 잠시나마 잊어보렴.
砧山晩照
砧巒蒼翠水西頭
夕照重添畵裏秋
向晩登臨無限好
黃昏休遣美人愁
선생은 슬하에 4남을 두었는데 옛 청구대학 설립자 최해청이 그의 둘째 아들이고 이 시문은 손자 최찬식이 번역했다.
그러나 번역문 중제2경의 건들바위는 '삿갓바위'의 제3경의 자래바위는 '거북바위'의 잘 못이다.
大 邱 十 景 (대 구 십 경)
제1경 : 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강의 뱃놀이) 大 邱十景(대구십경)을 노래한 徐居正(서거정)의 七言絶句(칠언절구) 十首(십수)가 傳(전)해오고 있다. 원래 十詠(십영)인 것을 大丘十詠(대구십영), 大丘十景(대구십경), 達城十詠(달성십영), 達城十景(달성십경)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당시에는 大丘(대구)로서의 邑城(읍성)이 축조되지 않았고 達城(달성, 현재의 달성공원일대)이 그 堡障(보장)이 되어 慶尙道都觀黜陟使(경상도도관찰출척사)가 巡(순찰)할 때며 大丘邑(대구읍)에는 知郡事(지군사)를 두고 있던 때이다. 일찍이 達城(달성)이 達城徐氏(달성서씨)의 世居地(세거지)임을 지금의 달성공원 경내에 1971년에 세워진 達城徐氏遺墟碑(달성서씨유허비)가 그 來歷(내력)을 말해주고 있다. 琴湖淸淺泛蘭舟(금호청천범난주) 금호강 맑은 물에 조각배 띄우고 蘭舟(난주) : 本蘭(본난) 木蓮(목련)으로 만든 조각배 五湖(오호) : 중국의 큰 호수로 陽湖(파양호), 靑草湖(청초호), 洞庭湖(동정호), 琴湖江(금호강)은 그 根源(근원)이 둘인데 하나는 慶州(경주)의 母子山(모자산)에서, 또 하나는 新寧(신녕)의 普賢山(보현산)에서 發源(발원)하여 永川(영천) 雙溪(쌍계)에서 合流(합류)하고 河陽(하양), 半夜月(반야월)을 지나면서 구비마다 아름다운 景勝(경승)을 이루니 蛾洋樓(아양루)가 있는 東村유원지 일대가 그렇고 檢丹(검단)의 蒼壁(창벽)과 花潭(화담)의 진달래, 砧山 落照(침산 낙조)와 櫓院(노원)의 白沙場(백사장), 臥龍山(와룡산)의 玉沼岩(옥소암), 江倉(강창)의 절벽을 둘러 江停(강정)나루에서 洛東江(낙동강)으로 流入(유입)하는 大邱의 젖줄로서 江岸(강안) 곳곳에 樓臺亭舍(누대정사)와 景勝地(경승지)가 많아 時人墨客(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國秋(연우공몽택국추) 이슬비 자욱이 가을을 적시는데 笠巖(입암) 역시 新川과 마찬가지로 논란이 있어 왔다.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215번지에 있는 속칭 건들바위를 말한다. 큰 바위 위에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데 건드리면 건들건들 한다고 건들바위라 이름하였다 한다. 높이 3m, 너비 1.6m의 이 바위가 영검하다 하여 지금도 매년 정월초가 되면 부인들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면서 치성을 드리고 있다. 龜岑隱隱似驚岑(귀잠은은사오잠) 거북뫼 아득하여 자라산 닮았고 鰲岑(오잠) : 鰲山, 자라산, 中國에 있는 神仙이 산다는 山 龜岑(귀잠, 거북산)은 運龜山(운귀산), 午砲山(오포산), 자래방우산등으로 불리어온 대구광역시 봉산동의 제일여중이 있는 連龜山(연귀산)을 말한다 純宗(순종)때 大邱府民(대구부민)에게 午正(오정)을 알리기 위해 이 곳에서 포를 쏘았기로 午砲山(오포산)이라 한 것이다. 학교 건축시에 옮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이라도 바로 잡았으면 한다. 또 이 連龜山(연귀산)을 지금의 大德山(대덕산)이라 하고 安逸寺(안일사)가 있는 안지랭이골을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이의 근거는 극히 희박하다. 一年十二度圓月(일연십이탁원월) 일년에 열두번 鶴樓(학루)는 琴鶴樓(금학루)를 말한다. 대구광역시 중구 대안동 50번지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던 舊(구) 達城館(달성관, 客舍) 東北(동북)쪽 모퉁이에 世宗 7년(1425) 당시 大邱邑知軍事(대구읍지군사)였던 琴柔(금유)가 세우고 慶尙道都觀察黜涉使(경상도도관찰출섭사)였던 拙齋(졸재) 김요가 記文(기문)을 썼는데 『옛사람이 사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그 地名(지명)에 따르거나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된다. 巴陵(파릉)의 岳陽樓(악양루, 중국 악양현에 있고 洞庭湖(동정호)의 아름다운 경치를 부감할 수 있는 누각)는 그 地名(지명)을 땄으나 醉翁亭(취옹정)은 저주지사인 醉翁(취옹, 宋의 歐陽修(구양수)의 別號(별호))의 이름을 땄듯이 이제 琴候(금후)가 邑(읍)에 부임했고 邑(읍)에 琴湖(금호)의 이름도 있고보니 그 이름과 樓(누)의 모양이 鶴(학)이 춤추듯 하여 樓에 오른 즉 一琴(일금)에 一鶴(일학)이라 世俗(세속)의 티끌을 털어내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상쾌한 氣象(기상)이로다. 出水新花疊小錢(출수신화첩소전)만성전) : 만백성의 병을 고침 南沼(남소)란 남쪽 못이란 뜻인데 지금 靈仙市場(영선시장) 들어선 靈仙池(영선지, 또는 靈信池)라는 설도 있으나 이는 당치 않는 말이다. 영선지는 1923년에 넓이 10,017평으로 판 貯水(저수) 灌漑用(관개용) 못이다. 그래서 聖堂池(성당지)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北壁(북벽)의 香林(향림)은 대구광역시 도동 180번지 일대의 절벽산에 자생한 側柏樹林(측백수림)을 말한다. 대구천연기념물 제1호이기도 한 측백나무는 常綠僑木(상록교목)로 원래 중국의 특산으로 알려졌으나 우리나라의 丹陽(단양), 英陽(영양), 蔚珍(울진) 및 安東 等地의 山地에서도 자라고 있는데 북벽의 향림은 측백이 자랄 수 있는 분포지역의 南限界地(남한계지)로 植物地里學士(식물지리학사)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遠上招提石逕層(원상초제석경층) 멀리 절로 가는 좁은 돌층길 招提(초제) : 절, 사찰 여기서 承句(승구)의 靑藤(청등)이 新輿覽(신여남)과 英祖年間(영조년간)에 편찬된 大丘邑誌(대구읍지)에른 靑藤(청등, 푸른등나무)로 되어 있고 純祖(순조) 32년(1832)의 慶尙道邑誌中(경상도읍지중)의 大丘府邑誌(대구부읍지)와 高宗(고종) 32년(1895)에 된 嶺南邑誌中(영남읍지중)의 大丘府邑誌(대구부읍지)에는 「靑鞋(청혜)」(푸른 짚신)으로, 日帝下(일제하) 1924년에 나온 大邱府邑誌(대구부읍지)와 達城徐氏派譜(달성서씨파보)에는 靑衫(청삼, 푸른적삼)으로 나와 있다. 新輿覽(신여남)의 靑藤(청등)대로함이 마땅하나 「푸른등나무 흰 버선에 검은 등나무」 또는 『푸른 등나무 흰 버선에 검은 지팡이』보다는 『푸른 적삼 흰 버선에 검은 지팡이』가 보다 形(형)의 具象化(구상화)를 위해 더 좋을 것 같은데 고증할 길이 없다. 그리고 洞華寺(동화사)는 大邱(대구)의 東北(동북)쪽 18km 지점인 道鶴洞(도학동) 八公山(팔공산) 기슭에 있는 新羅(신라)의 古刹(고찰)로 炤智王(소지왕) 15년(493)에 極達和尙(극달화상)이 創建(창건)하여 처음 瑜伽寺(유가사)로 하였다가 340년 후인 興德王(흥덕왕) 7년(832)에 憲德王子(헌덕왕자) 心地王師(심지왕사)가 重建(중건)할 때 簡子(간자) 892개를 던져 그 떨어진 곳에 佛堂(불당)을 이룩하니 지금의 籤堂(첨당) 뒤 작은 우물이 있는 곳인데 때마침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꽃이 피었다 해서 洞華寺(동화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官道年年柳色靑(관도년년류색청) 한양길 버들잎은 해마다 푸르고 短亭長亭(단정장정) : 작은숙사와 큰 숙사 옛날에 五里마다 公山千丈倚峻層(공산천장의준층) 팔공산 천길 높이 가파르게 솟고 沆瀣(항해) : 이슬기운 八空山은 大邱盆地(대구분지)의 東北部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는 산줄기이다. 新羅(신라)때는 父岳(부악)이라 하였다가 나라의 중앙에 있다 해서 中岳(중악)이라고 불렀고 또 여기서 나라의 公的儀式(공적의식)인 祭天壇(제천단)을 설치하게 되어 八公이라 하였다. 水自西流山盡頭(수자서류산진두) 물줄기 서로 흘러 산머리에 닿고 蒼翠(장취) : 푸른빛, 푸른물총새 砧山은 대구의 新川河口(신천하구)를 지키는 속칭 水口(수구)막이 山이라 하고 방망이를 닳았다 하여 일명 방망치산이라고도 하였다. 높이 144m의 平地(평지)에 솟은 獨山(독산)으로 이조때는壇(여제단)이 있었다 하는데 없어지고 지금은 침산공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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